봄철 동해안서 부는 '태풍급 강풍'의 대명사…대형산불 주범
인화력 강한 소나무 단순림은 '불쏘시개' 역할…확산에 한 몫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으로 번져 동해안 일대를 초토화한 울진삼척 산불이 밤사이 급속 확산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양간지풍'(襄杆之風)과 무관하지 않다.

[울진삼척 산불] LNG기지 위협한 화마 기세…'양간지풍'의 위력
양간지풍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은 양양과 고성 간성사이, 양양과 강릉 간 국지적으로 부는 강한 바람으로, 봄철 동해안에서 부는 태풍급 강풍의 대명사나 다름없다.

매년 이맘때면 부는 양간지풍은 동해안 대형산불 확산의 주범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피해를 키우고,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삼척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기지도 집어삼킬 듯한 화마의 기세는 양간지풍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철 태풍급 강풍으로 불리는 양간지풍은 가뜩이나 건조하고 가파른 지형인 동해안에서 산불 발생 시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한다.

고온 건조한 특성이 있는 데다 속도도 매우 빨라 산불을 급속도로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2005년 천년고찰 낙산사를 불태운 양양산불이 났을 때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32m까지 관측됐다.

1천757㏊의 산림을 집어삼킨 2019년 4월 동해안 산불 당시 미시령의 최대순간풍속은 초속 35.6m였다.

이번 울진삼척 산불의 큰 고비였던 5일 오전 4∼6시 사이 울진 온정면과 삼척 원덕읍 월천리 일대에는 각각 초속 21.5m와 초속 15.2m의 강풍이 몰아쳤다.

이 바람은 봄철 '남고북서'(남쪽 고기압·북쪽 저기압) 형태의 기압 배치에서 서풍 기류가 형성될 때 자주 발생한다.

[울진삼척 산불] LNG기지 위협한 화마 기세…'양간지풍'의 위력
국립기상연구소 분석 결과 양간지풍은 상층 대기가 불안정한 역전층이 강하게 형성될수록, 경사가 심할수록, 공기가 차가워지는 야간일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이 때문에 산불 진화의 핵심인 진화 헬기를 무력하게 만들고, 산불진화대의 접근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양간지풍은 산불 확산 속도를 올리는 것은 물론, 불똥이 날아가 새로운 산불을 만드는 '비화'(飛火) 현상도 일으킨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실험 결과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 빨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화는 마치 '도깨비불'처럼 수십∼수백m 건너까지 불씨를 옮기는 까닭에 산불 진화에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히기도 한다.

이번 울진삼척 산불도 강풍을 타고 최초 발화지점인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도 경계를 넘어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일대까지 확산, LNG 생산기지를 위협하기까지는 불과 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다 인화력이 강하고 내화성이 약한 소나무 단순림은 동해안 대형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울진삼척 산불] LNG기지 위협한 화마 기세…'양간지풍'의 위력
이처럼 화약고나 다름없는 동해안 산림에 작은 불씨라도 던져지면 도화선에 불이 붙어 뇌관이 폭발하듯이 걷잡을 수 없는 대형산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울진삼척 산불로 인한 피해는 5일 오전 11시 현재 3천500ha(울진 3천240ha·삼척 260ha)가 잿더미가 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또 주택 116채가 소실되는 등 158곳에서 재산피해가 나고 울진과 삼척 35개 마을 주민 6천126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