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준 초대 관장 "AI·VR 접목한 미래형 미술관 선보일 것"
“공과대학 미술관이라니 생뚱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 다양한 공학 기계를 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예부터 예술가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내는 ‘미래학자’ 역할도 해왔습니다. 인공지능(AI)처럼 새로운 기술이 도래하는 시기에 ‘예술가 학자’가 한국에서도 꼭 필요합니다.”

예술대가 아니라 공과대에 미술관이 설립된다면 어떤 작품이 전시될까? 내년 KAIST에 들어설 미술관을 두고 많은 사람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 미술관의 초대 관장을 맡은 사람이 바로 이진준 KAIST 문화과학기술대학원 교수(사진)다. 역대 KAIST 교수 중 예술가가 정년트랙 정식 전임교수가 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현재 작품전시 및 연구자료 수집을 위해 영국에 머무르고 있는 이 교수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KAIST가 만들어갈 미술관은 어떤 모습일까? 이 교수는 “아직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기존과 다른 ‘미래형 미술관’을 만들어나갈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실험정신을 담은 회화와 조각을 비롯해 인터넷·AI·가상현실(VR) 등 다양한 정보기술(IT)을 접목한 ‘미디어아트’ 전시는 물론 연구와 교육·네트워크까지 할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활동의 중심이 바로 학자인 동시에 예술가인 ‘아티스트 스콜라’다.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스콜라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예술로서 신기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미래형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 본인도 AI를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다. 지난해 그가 발표한 ‘Empty Garden’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을 돌며 끊임없이 순회하는 정원의 모습을 AI 기술로 생성한 영상미술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영국 ‘블룸버그 뉴컨템포러리즈 2021 현대미술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데이비드 호크니, 데미안 허스트 등 현대미술계 거장으로 평가받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거쳐간 미술계 신인 공모전이다.

이 교수는 “AI는 예술가에겐 무척 매력적인 도구라 마치 인류가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라며 “AI 연구자와 예술가가 함께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를 지속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경영학도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대학 시절 조소의 매력에 빠지면서 졸업 후 미술대에 다시 편입해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이 교수는 “주변에서는 다들 의아해했지만 예술을 접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던 저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여정이었다”며 “경영학을 비롯한 모든 배움과 경험들이 고스란히 제 예술세계에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경험을 지닌 예술가 네트워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학교 강의와 미술관 건립 외에 본업인 예술가로서 활동도 함께 펼쳐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는 “현재 영국을 비롯한 해외의 규모 있는 전시와 특강 등과 관련해 2~3년 정도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