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에서도 러시아 보이콧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한 예술가들의 공연이 잇따라 취소됐다.

오스트리아 빈필하모니오케스트라는 지난 26일 미국 카네기홀 공연에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를 내세울 예정이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이들을 공연에서 배제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합병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는 등 '친 푸틴파'로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본격화하자 카네기홀은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협연자 데니스 마추예프를 야닉 네제 세갱과 조성진으로 각각 교체했다.

이에 조성진은 독일 베를린에서 급히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뉴욕타임스(NYT)는 조성진이 2019년 이후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한 적이 없고, 빈필하모닉과 협주한 적도 없으며,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것도 처음이지만 부담스러운 상황에서도 훌륭하게 연주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게르기예프는 미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입지가 위태로워졌다.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을 비롯해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로테드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이 그에게 명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 그렇지 않을 경우 관련 공연을 취소할 예정임을 밝혔다.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덴마크 공연도 취소됐다. 네트렙코는 지난 25일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었으나, 푸틴 지지자인 그를 향한 덴마크 내 반대 여론이 거세져 결국 공연 한 시간 전 취소를 결정했다.

공연이 취소된 다음 날 네트렙코는 SNS를 통해 "나는 이 전쟁을 반대한다. 나는 러시아인이고 조국을 사랑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많은 친구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다만 "예술가를 비롯한 공적 인물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말하거나 조국을 비난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도 오는 7~8월 예정돼 있던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최대 음악 축제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유로비전)의 주최 측인 유럽방송연합(EBU)도 올해 행사에서 러시아 참가자의 공연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EBU는 "우크라이나의 전례 없는 위기를 고려할 때 올해 행사에 러시아를 참여시킬 경우 유로비전의 평판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에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