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은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AI에 투자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곡동 LG AI연구원 사무실.  ㈜LG 제공
LG그룹은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AI에 투자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마곡동 LG AI연구원 사무실. ㈜LG 제공
음악과 이미지를 창작하고 맞춤형 항암제의 개발 기간을 줄여주는 인공지능(AI), 사람과 대화하며 문맥까지 파악하는 챗봇…. LG AI연구원이 지난해 개발한 기술들이다. 2020년 12월 출범한 새내기 조직임에도 AI와 관련한 기술적 난제 18건을 해결했다.

미래는 AI에 있다

초거대 AI 엑사원으로 만든 AI 인간 ‘틸다’.
초거대 AI 엑사원으로 만든 AI 인간 ‘틸다’.
지난 25일 서울 마곡동 LG AI연구원.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아 지겨워’라고 크게 쓰인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하고 싶은 연구 원 없이 하는 것도 지겹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이곳에서는 연구원 190명이 그룹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않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회사 측은 소개했다.

AI연구원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주문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구 회장은 취임 초 이사진 회의에서 “배터리·전장 등 10년 먹거리는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라며 “AI 기술을 선제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그룹은 배경훈 당시 LG전자 상무를 연구원장으로 발탁하며 그룹 전체의 AI 역량을 끌어올릴 조직을 이끌어달라고 주문했다. 세계 10대 AI 석학으로 꼽히는 이홍락 미국 미시간대 교수를 전무로 스카우트한 이도 구 회장이었다.

출범 1년 만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공개한 초거대 AI 엑사원이 대표적이다. AI의 신경망인 파라미터가 3000억 개에 달해 사람의 뇌처럼 학습하고 판단할 수 있다. 각 분야에 응용하면 전문가 수준으로 의사 결정을 돕는 AI 인간을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 이달 초 뉴욕패션위크에 참가한 AI 인간 ‘틸다’는 엑사원을 패션에 접목한 사례다. 틸다가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창작한 이미지를 박윤희 디자이너가 패턴으로 활용해 전시회까지 열게 됐다.

LG에 꼭 맞는 엔지니어 육성

올초 정식 출범한 사내 AI대학원에서는 LG 맞춤형 엔지니어를 육성한다. 방학 없는 집중 교육을 통해 석사과정은 9개월, 박사과정은 18개월 코스로 운영한다. 졸업 후에는 사내에서 학위로 인정된다.

계열사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이들 과정의 연구과제다. 연구원들은 사내 전문가로 꾸려진 교수진으로부터 AI 지식을 배운 뒤 과제에 적용하고, 학회지 등재 수준의 논문을 작성한다. 이후 계열사로 돌아가 AI 역량을 퍼뜨리는 역할을 맡는다.

지난해 석·박사 과정을 시범 운영한 결과 LG디스플레이는 AI를 활용해 같은 화면에 픽셀이 더 많이 들어가도록 설계하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LG전자와 LG이노텍은 AI로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구 회장도 지난해 말 업무 보고를 받은 뒤 크게 만족하며 추가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는 11명의 신입생이 AI대학원에 입학하고, 30명이 엑스퍼트 코스를 등록해 역량을 키운다. 제조 공정의 이상을 즉시 감지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기술, 숙련된 전문가만 할 수 있는 나프타 제조 컨트롤 작업을 로봇으로 할 수 있는 기술 등이 과제로 선정됐다. LG는 AI 인재 확보·육성에 2023년까지 2000억원을 투자하고, 2030년까지 그룹 내에 1000여 명의 AI 전문가를 둘 계획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