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문턱 낮아 누구나 도전했지만…
투자자 태반 계약 포기, 실수요자만 거래
부동산 시장이 차갑게 식자 투자자들도 갈 곳을 잃었다.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던 장기일반 민간임대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청약 경쟁률이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높은 웃돈(프리미엄)을 바라고 들어왔던 투자자들은 예상보다 부진한 상황에 손을 털고 떠났고, 간간이 실수요자 중심의 거래만 이뤄지고 있다.
올해도 경쟁률 '세 자릿수' 기록한 장기일반 민간임대아파트
25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1~23일 임차인을 모집한 '더샵프리모 성황'은 평균 11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남 광양시 성황도이지구에 지어지는 이 단지는 지하 2층~지상 22층 규모로 전용 84㎡만 486가구로 구성된다.지난달 21일 청약을 진행한 대구 북구 칠성동2가 일대에 들어서는 ‘호반써밋 하이브파크’는 446가구 모집에 10만여명이 몰리면서 평균 24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용 84㎡A(기타지역)은 877대 1로 최고 경쟁률이 나왔다.
민간임대아파트의 경쟁률이 높은 이유는 청약 문턱이 낮아서다. 소득이나 자산 제한이 없고 만 19세 이상이면 청약 통장 없이도 신청할 수 있다. 추첨제로 당첨자를 가리기 때문에 가점이 낮아도 도전할 수 있다. 재당첨 제한 등의 규제도 없다.
하지만 분위기는 작년에 비해 180도 달라졌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다. 뜨거운 경쟁률은 계약까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 더샵프리모 성황은 미계약분이 나왔고, 여전히 임차인을 구하는 중이다. 일부 로열층을 제외하고는 매수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부동산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난달 당첨자 발표 이후 바짝 거래됐다. 당시에도 로열층의 경우 400만~500만원 수준의 웃돈이 붙어 거래됐다"며 "지금은 웃돈도 거의 붙지 않고 잠잠하다"고 했다. '호반써밋 하이브파크' 상황도 별반 다르진 않다. 이 단지 역시 미계약분이 나와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다. '호반써밋 하이브파크'를 중개했던 현지 공인 중개 관계자는 "당첨자 몇 명이 매수인을 연결시켜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최근엔 찾는 사람이 없다"며 "대구에 최근 미분양 물량이 넘쳐 굳이 이것(장기 민간임대아파트)을 잡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수성구 등 대구 핵심지역에서 미분양 물량을 잡는 게 더 낫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호반써밋 하이브파크' 분양 사무소 관계자는 "한시적으로 500만원의 중도금 이자를 지원하고 있다"며 "선착순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지금 계약을 하셔야 받을 수 있다"고 계약을 유도했다.
'속 빈 강정' 돼버린 민간임대아파트…미계약도 넘쳐
민간임대아파트는 작년 말까지만해도 인기를 모았다. 지난해 12월 제주 애월읍 일대에 공급되는 '제주 애월 남해오네뜨'는 해당 지역 경쟁률이 117대 1, 기타지역은 2464대 1을 기록했다. 같은 달 청약을 진행한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공급되는 '도봉 롯데캐슬 골든파크'는 시행사 측에서 경쟁률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신청자가 수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했다.임차권을 중개했다는 한 공인중개 관계자는 "전국에서 받는 청약은 수백 대 1의 경쟁률이 나오는 것이 기본"이라며 "실수요자들도 청약을 넣었지만 대부분은 웃돈을 노리고 들어온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시장에서는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실수요자로선 더 나을 수 있단 분석도 나온다. 투기 수요가 빠지면서 애초 목적에 부합하게 되면서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서민 주거 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임대아파트가 그간 투기 수단으로 악용됐다"며 "이런 투기수요에 정작 임대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기수요가 빠지니 되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높은 분양가로 상품이 나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민간임대아파트의 분양가는 시행사 측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서다. '호반써밋 하이브파크' 분양가는 적게는 5억5000만원대에서 많게는 6억9000만원대인데, 바로 옆에 있는 '오페라삼정그린코아더베스트' 전용 84㎡는 이달 6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10년 후 분양 전환을 고려해도 비싸다는 게 현지 공인중개업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묻지마 청약' 등이 몰리면서 사업 주체가 '배짱' 분양가를 내놓은 것"이라면서 "일각에선 '잘 모르는 실수요자들에게 빨리 물건을 팔고 끝내려는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장기간 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것이 자산 축적에는 불리하다는 점도 실수요자는 고려해야 한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미국 IAU 교수)는 "당장 사는 동안은 임대료 부담 등이 적을 순 있겠지만, 임대료를 아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저축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분양 전환을 받지 못하고 나와야 하는 시점에는 반환된 보증금과 주변 시세가 맞지 않아 결국 지역에서 밀려나게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