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좇을 것인가, 다른 길을 갈 것인가.’

온라인 소비가 대세가 되면서 전통의 유통 강자들이 강요받고 있는 선택지다. 롯데쇼핑과 신세계그룹은 쿠팡, 네이버처럼 ‘세상의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e커머스 플랫폼행을 택했다. 반면 정지선 회장(사진)의 현대백화점그룹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명품, 가구, 패션, 뷰티 등 특정 상품군만 판매하는 전문몰 전략이다. 지난해 10개 전문물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7000억원, 1400억원(추정치)이다. ‘빅3’ 유통그룹 중 온라인부문에서 이익을 내는 건 현대백화점그룹이 유일하다.

정지선의 우보천리 전략

25일 현재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온라인몰은 10개다. 2020년에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패션몰인 EQL을 비롯해 건강식 전문몰인 그리팅몰, 프리미엄 식품만 판매하는 현대식품관투홈 등 3개를 선보였다. 같은해 12월엔 복지몰 전문 기업인 이지웰을 인수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기존 더현대닷컴, 온라인면세점(이상 백화점), 현대H몰(홈쇼핑), 더한섬닷컴, H패션몰(이상 한섬), 리바트몰 등까지 합친 그룹 온라인 전체 매출은 4조7000억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28% 늘었다. 2017년(2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두 배로 증가한 셈이다.

외형으로 보면 현대백화점그룹의 전략은 ‘소걸음’에 가깝다. 신세계그룹만 해도 지난해 G마켓, 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온라인 거래액이 25조원(작년 말 누적, 쓱닷컴과 이베이코리아 합산) 규모로 올라섰다. 롯데쇼핑의 e커머스 플랫폼인 롯데온의 2020년 거래액도 7조6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정지선의 우보전략’은 이익으로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1400억원으로 2018년 이후 3년 만에 세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쟁사들이 가격경쟁과 공격적인 투자로 총알을 소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회 잡기 위한 M&A엔 ‘속도전’

정 회장은 임원 회의에서 ‘차별화된 e커머스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가격이 아닌, 고객의 생활가치 상승에 무게중심을 두는 게 그룹의 온라인 전략”이라는 것이다. 전문몰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올초 현대백화점은 기존 3개로 분산돼 있던 디지털 관련 조직을 통합해 디지털사업본부를 출범했다. 배치 인력만 100여 명이다.

현대홈쇼핑은 미디어커머스 사업을 위한 CIC(사내독립기업)를 올초 새로 설립했다. 직접 기획한 브랜드를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 중심으로 판매하기 위한 조직이다. 현대리바트도 온라인 조직을 ‘리빙상품기획팀’으로 변경하고 전문몰에 특화한 차별화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인력을 두 배로 늘렸다. 더한섬닷컴의 온라인 전용 상품은 이날 현재 850여 개로 2020년 대비 세 배가량 확대됐다.

전문몰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도 적극적이다. 리바트는 지난해 11월 1475억원을 투자해 경기 용인에 연면적 8만5950㎡ 규모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한섬도 500억원을 들여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를 구축하는 등 전문몰 물류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실속형 온라인 부문은 그룹 성장에도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2018년 19조3000억원에서 2020년 20조원으로 정체를 보인 매출이 지난해엔 약 25조원으로 약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별 온라인 사업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차별화된 상품 또는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의 인수합병(M&A)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