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 이의 제기 가능"…완공 아파트 2천여채 '폭파 강행' 주목
중국판 '팜 아일랜드', 정치·자금 문제로 '흐지부지'
1조원대 헝다아파트 철거명령 중국서 논란…당국 한발 후퇴
완공 단계에 접어든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하이난(海南)성 아파트 2천여채를 열흘 안에 철거하라는 중국 지방 당국의 초강경 행정명령을 둘러싸고 중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정부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진 헝다가 적어도 시공 중인 주택 건설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돕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제시한 가운데 나온 이번 철거 명령이 '뜬금없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해당 지방 정부도 결정을 재고할 수 있다면서 한 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 1조원대 손실 확정 땐 헝다 채무조정에도 '직격탄'
헝다 측에 아파트 강제 철거 명령을 내린 하이난성 단저우(儋州)시 당국자는 4일자 중국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열흘 안에 위법 건축물 철거를 집행할 것인지와 관련해 먼저 헝다 측의 반응을 봐야 해 현재로서는 판단하기 어렵다"며 "헝다가 행정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면 일정 기간에 걸쳐 관련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단저우시는 작년 12월 30일자 공문에서 도시계획법 위반을 이유로 헝다 측에 하이화다오(海花島) 2호섬에 있는 건물 39개 동을 열흘 안에 철거하라고 명령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헝다 측은 철거 명령에 불복해 60일 안에 이의 신청을 하거나 6개월 안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 등에 따르면 철거 명령 대상 39동의 건물은 거의 완공된 2천700여채의 고층 아파트다.

총 건축 면적은 43만㎡로 예상 판매 가격은 77억위안(약 1조4천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분양이 거의 끝났지만 시 당국이 작년 5월 이를 위법 건축물로 규정해 사업 승인을 취소하고 공사 중단을 지시함에 따라 헝다는 수분양자들에게 하이화다오에 있는 다른 아파트를 대신 제공하거나 분양 대금을 환불해준 상태다.

단저우시 당국의 하이화다오 헝다 아파트 철거 명령은 시장이 예상치 못한 초강경 조처라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매일경제신문은 "단저우시의 행정 처분 결정을 두고 외부에서는 보편적으로 돌발적이라고 느끼고 있다"며 "앞서 여러 차례 나온 하이화다오 바로잡기 방안 중 '철거'까지 언급된 적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하이난의 한 부동산 기업 관계자는 차이신에 "이미 완공돼 판매된 상황에서 분양 허가권과 토지 사용권이 취소된 데 이어 갑자기 철거가 결정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며 "헝다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이렇게 심각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부동산 업계에 큰 불안감을 안긴 단저우시의 강경 조처가 중앙 정부의 헝다 사태 처리 방향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헝다(恒大·에버그란데)의 디폴트 사태 이후 중국 당국은 헝다를 직접 구제하는 데는 소극적이지만 사태의 파장이 부동산 업계는 물론 전체 경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려고 현재 중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헝다의 아파트 건설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1조원대에 달하는 아파트 2천여채를 열흘 안에 '폭파'하라는 단저우시 당국의 명령은 헝다 프로젝트의 원만한 완성을 통해 수분양자, 현장 근로자, 협력 업체에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배치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지난달 달러채 디폴트를 내기 시작하는 등 자금 사정이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1조원대에 달하는 큰 규모의 손실이 확정돼 대차대조표에 반영되면 광둥성 당국이 주도하는 헝다의 채무·구조조정에도 파급이 미칠 수 있다.

헝다 측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헝다는 3일 밤 낸 공고를 통해 단저우시 당국으로부터 철거 명령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확인하면서도 향후 당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가운데 적절한 처리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철거 명령 대상이 하이화다오에 건설된 주택 6만여채 가운데 극히 일부라면서 문제가 된 곳은 2번섬에 있는 '2-13-1 블록'의 39동 뿐이라고 강조했다.

◇ 쉬자인 꿈꾼 '중국판 팜아일랜드', 흉물 전락 위기
1조원대 헝다아파트 철거명령 중국서 논란…당국 한발 후퇴
쉬자인(許家印) 헝다 회장의 '심혈작'으로 불리는 하이화다오 사업은 총 1천600억위안(약 29조9천억원)을 투자해 두바이의 명소 팜 아일랜드처럼 인공섬을 조성해 호텔, 워터파크 등 휴양·오락 시설과 고급 별장촌 및 아파트 단지 등이 섞인 복합 레저 단지를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단저우시 해안에서 600m 떨어진 바다를 매립해 만든 800만㎡ 넓이의 하이화다오는 꽃 모양을 한 1호섬이 중심에, 나뭇잎 모양을 한 아파트 위주의 2호섬과 고급 별장 위주의 3호섬이 양옆에 자리 잡고 있다.

헝다는 지난 2013년 바다 매립권 허가를 받고 본격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정치·환경·자금 등 여러 문제가 잇따라 돌출하면서 하이화다오의 정상적 개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쉬 회장과 의기투합해 하이화다오 사업을 자신의 공적으로 만들고자 했던 장치(張琦) 전 단저우시 당 서기가 비리 혐의로 낙마하면서 하이화다오 사업은 곧바로 바다 환경을 파괴하는 '불법 프로젝트'로 눈총을 받게 됐다.

작년 1월 당 중앙기율검사위는 장 전 서기의 '죄상'을 공개하면서 그가 섬 개발을 핑계로 돈을 벌기 위해 규정을 어기고 하이화다오 사업을 인가했다고 비판했다.

장 전 서기가 낙마한 가운데 지난 2017년부터 중앙정부 환경 감사팀이 하이난성을 상대로 전면적인 감사에 나섰고 하이화다오의 매립 및 개발 과정에서 여러 환경 파괴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바로잡기'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때부터 하이화다오 개발을 둘러싸고 단저우시 당국과 헝다의 갈등은 본격화했다.

이번에 철거 대상이 된 39개 아파트 동도 헝다가 환경영향평가 허가서를 완전히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착공에 나선 것이 화근이 됐다.

지방 정부와의 관계 변화 외에도 헝다의 자금난도 하이화다오 개발 지연의 큰 원인이 됐다.

2020년 하반기부터 중국 정부는 부동산 산업 '개혁'의 일환으로 차입에 의존한 부동산 업계 관행에 '메스'를 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헝다를 위시한 중국의 대형 부동산 업체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면서 투자 여력을 상실했다.

헝다가 지금껏 이 사업에 투자한 자금은 810억위안으로 당초 목표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팜 아일랜드' 사업은 원래 목표에서 크게 이탈해 '흉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의 건축 플랫폼인 젠주창옌왕(建筑暢言網)이 작년 12월 건축가와 네티즌을 상대로 한 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가장 추한 10대 건축물' 순위에서 하이화다오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하이화다오에는 6만여채의 주택이 들어섰지만 입주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중국 매체들은 전했다.

일부 호텔과 작년 시범 가동되기 시작한 워터파크를 제외하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 돼야 할 레저·휴양 시설은 아직 제대로 차지 못해 관광객을 끌어모을 매력도 부족하다는 평가다.

1조원대 헝다아파트 철거명령 중국서 논란…당국 한발 후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