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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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코로나19’라는 단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길 바랐지만, 여전히 주식시장에 대한 2021년 회고와 2022년 전망 모두의 키워드였다. 펀드 매니저들은 작년에 회복돼가던 공급망의 균열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다시 벌어지면서 예측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헤쳐나가면서 기술력을 키웠고, 감염병 확산 사태로부터 회복된 뒤 부각될 산업들은 올해 '코스피 3000'에 대한 희망을 키우고 있다. 한경닷컴은 펀드매니저들로부터 올해의 투자기회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설문조사에 응한 펀드매니저는 김정수 미래에셋자산운용 리서치본부 이사, 민수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 정무일 트러스톤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 정성한 신한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 최진혁 대신자산운용 퀀트운용본부 팀장(가나다 순) 등이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내노라하는 이들이 올해 투자 유망 산업은 '반도체'였다.

한국 대표 산업 반도체, 펀드매니저의 올해 최선호주 꼽혀

펀드매니저들은 대체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을 촉발한 공급망 병목 현상 해소에 따른 실적 성장 가능성을 이유로 꼽았다. 다른 부품의 생산 차질로 정보기술(IT)기기 생산업체도 제대로 공장 가동을 하지 못해, 생산 차질이 적었던 메모리반도체가 IT기기 생산업체의 재고로 쌓인 탓이었다.

최진혁 팀장은 “반도체 기업의 주가는 다른 업종 대비 실적에 대한 선행성이 높은 경향이 있다”며 “반도체 기업 주가는 평균적으로 현물 가격을 3~9개월 선행하는데, 최근 메모리반도체 현물 가격이 일단락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오는 2분기 이후 고정거래 가격 반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김정수 이사는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와 대만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적어 갭 차이가 있는 한국의 반도체 업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미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 주가가 강세를 보인 배경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인한 가격 급등이었다.

김정수 이사, 정성한 센터장, 최진혁 팀장은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로 실적을 끌어올리지 못해 주가가 부진했던 자동차 업종도 공급망 차질 완화의 수혜 업종에 올렸다.

민수아 CIO과 정성한 센터장은 메타버스 관련 산업으로 반도체 업종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까지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 기대감은 주로 소프트웨어와 미디어·콘텐츠 기업들에 반영됐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IT기기의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IT기기를 만드는 데도 메모리반도체가 필요하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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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정성한 센터장은 “정보 고속도로의 핵심인 5세대(5G) 이동동신 장비 기업도 (메타버스 산업 확장 수혜업종에) 해당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무일 본부장은 “가상이 현실이 되는 사회에서 한국 미디어·콘텐츠 기업의 경쟁력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내에서 제조업(27%)과 비제조업(26.5%)의 비중 역전도 임박한 상황”이라며 미디어·콘텐츠 업종을 유망 업종으로 꼽았다.

최진혁 팀장도 “작년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플러스의 국내 서비스 개시로 올해부터는 OTT들의 국내 콘텐츠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며 “최근 OTT를 통해 공개된 ‘오징어게임’, ‘지옥’이 글로벌 흥행 파워를 입증했다”고 분석했다.

친환경 테마를 유망하다고 꼽은 펀드매니저도 4명(김정수 이사, 정무일 본부장, 정성한 센터장, 최진혁 팀장)이었다. 정책 이슈가 가장 큰 배경이다. 김정수 이사는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각국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환경에 집중해 저탄소 규제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미국은 친환경 인프라 투자 쪽에 집중하고, 한국은 세계적으로 처음으로 수소법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진혁 팀장은 친환경 테마 중에서 2차전지 섹터를 콕 찍었다. 그는 “올해 2차전지 완제품 제조업체(셀메이커)는 탄소배출 규제 강화에 따른 협상력 개선으로 배터리 원자재 가격 변동으로 인한 마진 훼손의 상당 부분을 완성차 업체로부터 보전받게 된다”며 “이에 따라 본격적인 흑자 구도에 진입하며 중국 기업들 대비 밸류에이션 할인폭을 축소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팬데믹 2년차에도 감염병에 울고 웃은 증시


이외 민수아 CIO는 “전통산업 중 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기술적 향상(업그레이드)이 있었던 기업”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민 CIO는 “투자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언제나 ‘세상의 변화’”라며 “기술의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생활 양식의 변화에 가장 신경 써왔고, 작년엔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가상세계 생태계의 출현이 가장 신경 쓰였던 한 해였다”고 회고했다. 전통산업이라도 기술적 향상이 있었던 기업을 유망하다고 꼽은 이유다.

메타버스 산업의 촉발에 가속도를 붙인 건 코로나19 확산 사태였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이 반강제적으로 자제되면서다. 김정수 이사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디지털화가 가장 신경을 썼던 이슈”라며 “확진자 수 증가 뿐만 아니라 (감염병 확산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삶의 변화 속도를 크게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올 한국증시, 미국보다 나을 수도"…펀드매니저들 입 모았다 [다시 열자! 3000시대]
나머지 펀드매니저들도 ‘작년에 가장 신경 쓰였던 이슈’를 하나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코로나19 재확산”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자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정무일 본부장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상적인 경제시스템에 균열이 발생했다”며 “공급 병목현상 장기화, 생산 차질,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기술의 등장 등으로 주식시장에 대한 예측력이 많이 하락했다”고 토로했다.

실제 코로나19 이슈는 작년 내내 주식 시장을 흔들었다. 정성한 센터장은 “상반기 코로나19의 진정으로 인해 그 동안 이연된 수요가 갑자기 폭증하면서 각국 GDP가 급격하게 개선되고 금리가 급등하는 등의 큰 변화가 있었고, 하반기 역시 예상치 못한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실물 경기에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은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증시 차별화 현상도 만들었다. 김정수 이사는 “상대적으로 제조기업의 비중이 적어 공급 부족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격 전가력이 높은 플랫폼, 콘텐츠,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며 구글, 애플, 아마존 등이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한 미국 증시가 강세를 보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반도체, IT부품 등 하드웨어쪽 비중이 높아 수혜가 기대됐으나, 공급망 이슈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작년 코스피지수의 연간 상승률은 3.64%에 그친 데 반해, 미국 나스닥지수는 22.14%가 올랐다.

동학개미, 올해는 서학개미 이길까

하지만 김 이사는 “현재 (공급망 차질 이슈가) 개선돼가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반도체 및 자동차 관련 업종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미국증시와 견줘 한국증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 “(작년에)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적었던 한국 증시가 글로벌 증시에서 충분히 선전할 수 있을 것”이란 김 이사의 말에 정무일 본부장, 정성한 센터장, 최진혁 팀장 모두 동의했다.

최 팀장은 “작년 12월 현재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폭락장을 포함해도 역사적 저점 수준”이라며 “대부분의 증시 부담 요인을 선반영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올해 코스피 기업 순이익 전망치는 작년 12월 집계 기준 약 184조원으로, 사상 최고치였던 2021년 예상치 171조원(네이버의 일회성 이익 15조원 제외)과 유사하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우려를 선반영하고 성장주의 본격적인 이익 실현 사이클에 진입하는 한국증시도 글로벌 평균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증시에 대한 전망은 미묘하게 결이 달랐다. 김정수 이사와 정성한 센터장의 생각은 ‘미국 기업들은 훌륭하지만, 주가는 싸지 않다’로 요약된다. 정 센터장은 미국 경제에 대해 “코로나19 백신·치료제, 달러 안정성, 4차산업혁명 주도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올해 워낙 주가가 많이 올랐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내년에 급격하게 둔화된다”며 “미국 증시의 안정성은 단기에 높을 수는 있어도 수익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김 이사도 “미국 증시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작년의 흐름이 올해도 지속되겠지만, 주가지수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무일 본부장은 “미국 증시의 양호한 성과는 혁신 기술과 글로벌 장악력을 갖춘 기업들이 미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글로벌 리더십 측면에서는 한국 증시가 내년에도 부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는 한국 증시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민수아 CIO는 동학개미(한국주식 투자)와 서학개미(미국주식 투자)의 대결구도를 설정해 물은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 증시 중에서도 프랑스 CAC40지수가 29% 상승,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27% 상승, 신흥국 중에서는 대만 TAIEX지수가 21% 상승으로 특히 강세였다”며 “흥미로운 점은 S&P500은 에너지 업종이, CAC40은 명품소비재 업종이, TAIEX는 해운 업종이 각각 강세를 보이는 등 나라마다 강세를 보인 업종 또한 차별화가 컸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인 시장이나 나라별 접근 보다는 기업별로 가장 경쟁력이 있거나 업황이 좋아지는 기업 위주의 상승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 전체에 대한 전망보다 보텀업(Bottom-up) 방식의 기업 리서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예상대로면 큰 영향 없어”

실제 작년말 증시를 긴장하게 했던 글로벌 중앙은행의 긴축 드라이브에 대한 펀드매니저들의 태도는 5명 모두 ‘관련 거시경제 지표를 꾸준히 체크해야 하지만,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정수 이사는 “예상치 못한 정책에 대해서는 금융시장의 반응이 크지만, 예상이 되는 정책에 대해서는 시장에서 선반영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긴축 드라이브에 대해) 시장은 부정적 영향보다는 경기 회복에 따른 대응으로 판단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연방준비제도·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무리한 긴축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성한 센터장은 “(연준이) 과거 긴축을 강하게 했을 때의 부작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긴축 속도를 조절해나갈 것”이라며 “현재의 금리 수준에서 2~3차례 (기준금리) 인상 정도는 주식 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방지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방지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리가 조금 올라도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민수아 CIO도 “(중앙은행들의) 긴축 정책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명목금리가 기대인플레이션보다 낮은 마이너스(-) 실질금리 국면이 이어져 금융시장에 큰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상에서 벗어난 금리 상승은 주식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거시경제 지표를 꾸준히 확인하라고 조언했다. 김정수 이사, 민수아 CIO, 정성한 센터장, 정무일 본부장은 물가 관련 지표를 꾸준히 체크해야 할 지표로 꼽았다.

최진혁 팀장은 환율을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원화 가치가 증시에서 외국인 수급 변화의 요인이기도 하고, 관리변동환율 제도를 택한 중국 위안화 환율에 대한 프록시(대리) 현상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올해 원화 가치는 완만한 강세를 예상한다”며 “통상적으로 원화 강세 국면에서 외국인 수급이 견조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올해는 외국인 수급이 작년 대비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5명의 펀드매니저 모두 '개인 투자자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물음에 ‘옥석 가리기’를 강조했다. “철저한 기업 분석을 바탕으로 아는 기업 위주로 장기투자 한다면 주식 투자가 여전히 가장 좋은 투자 수단”이라고 답한 민수아 CIO는 마지막 질문 뿐만 아니라 모든 질문에서 같은 취지로 답했다.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 이유는 코스피의 새로운 박스권 진입이다. 최진혁 팀장은 “2020년부터 이어져왔던 유동성 공급 영향으로 전반적으로 시장이 좋아 모든 투자자가 행복했던 그림은 (이제) 어려울 수 있다”며 “구조적으로 성장하면서 밸류에이션 매력이 있는 종목을 가려낼 수 있는 투자자와 아닌 투자자의 차이가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성한 센터장도 “과거 코스피의 2000 안팎의 박스권에서 삼성전자가 4배 오르는 동안 경기민감업종 기업들은 대부분 50% 이상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대상 기업을 어떻게 추릴지에 대해 정무일 본부장은 “세계 전체를 탐색하라”며 “글로벌 관점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ESG 측면에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체크하면 양호한 투자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정수 이사는 ‘시간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중국에서 자라는 ‘모소 대나무’에 비유했다. 이 식물은 4년동안 3cm만 자란 뒤 5년차에는 하루에 30cm씩 성장해 15m에 이른다고 한다. 김 이사는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면서 일차함수처럼 오르면 좋겠지만, 대부분 기업가치에 대한 투자자들의 공통적인 인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높아진 기업가치가) 한번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계속)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