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들어가는데 아까 말한 일 때문에 환전하지 못했어. 혹시 입금해줄 수 있어?”

데이팅앱·SNS '로맨스스캠' 주의보
30대 직장인 A씨는 한 달 전 페친(페이스북 친구)을 맺은 미국인 B씨의 부탁에 2000만원을 송금했다. 두 사람은 꾸준히 채팅하며 ‘유사연애’를 해왔다. 조만간 직접 만나 정식 교제하기로 했는데, 돈을 받은 B씨는 연락이 점차 뜸해지더니 이내 잠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를 맞아 로맨스스캠(연애 빙자 사기)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4일 국가정보원의 국제범죄 관련 소식지 ‘국제범죄 위험 알리미’에 따르면 올해 국정원 ‘111 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스캠 피해가 지난해에 비해 급격히 늘어났다. 올 11월 말까지 피해 사례는 28건, 피해액은 20억7000만원으로 지난해(3억7000만원)에 비해 그 규모가 다섯 배 이상 커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비대면 만남이 보편화하면서 피해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정서적으로 공허한 사람을 타깃으로 상당한 신뢰를 구축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의심이 들어도 ‘이 사람은 아닐 거야’라며 합리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해외 동포, 해외 파병 군인 등을 사칭해 퇴직금 통관비, 변호사비 등의 명목으로 입금을 요구하는 것은 고전적 수법이다. 요즘은 암호화폐 투자를 유도하거나, 사이버머니 환전을 부탁한 뒤 피해자가 환전 수수료를 내면 이 돈을 들고 달아나는 등 방식도 정교해졌다. 가짜 사이트 링크를 메시지로 보내 접속하도록 유도한 뒤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비대면으로 교제 시 인공지능(AI)으로 얼굴·음성을 변조하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신원을 숨기기도 한다.

지난달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국제범죄수사계는 해외 파병 군인·외교관·의사 등을 사칭해 국내에서 활동한 국제 스캠조직원 1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0명을 구속했다. 아프리카계 출신 외국인으로 조사된 이들은 피해자 24명으로부터 약 16억7000만원을 가로챈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로맨스 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신고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렵고 해외 범죄 조직인 경우가 많아 피해 회복이 간단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