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청소년, 부모 돌봄 기회 적어 문해 수준 더 낮아져
아르바이트 등 일상생활에도 지장…"맞춤형 교육 제공해야"

특성화 고등학교 2학년인 A군은 어머니, 새아버지, 형과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지적 장애가 있는 형은 직업훈련을 받던 중 코로나19로 인해 훈련을 중단하고 온종일 집에 있게 됐다.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는 새아버지도 일이 끊겼고, 지병이 있는 어머니도 집에만 있었다.

네 식구가 좁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A군은 가족들에게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조용히 해달라거나 비켜달라고 요구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A군은 코로나 확산으로 학교가 폐쇄된 기간 원격수업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 이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 청소년은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더 큰 폭으로 문해력 수준이 떨어졌다고 현장 전문가들이 전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교육 소외계층 청소년의 학습 손실은 일반 청소년보다 더 큽니다.

기존에도 문해력 수준이 높지 않았던 아이들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도 (초등학교) 4~5학년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코로나로 1년여간 학습을 멈춘 뒤 1학년 수준까지 문해력이 낮아진 경우도 있어요.

"
[문해력 리포트] ③ 코로나 학습 단절, 취약계층 자녀에 더 가혹했다
교육 소외 청소년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청소년과나란히'의 부은희 대표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에 의해 어느 정도 학습을 받았지만, 취약 계층 청소년은 외부와 단절됐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취약 계층 부모들이 자녀에게 학원, 체험학습 등 외부 활동 기회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명애 '예스맞춤코칭센터' 사무국장은 최근 수업하면서 학생들의 어휘력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예스맞춤코칭센터는 초등생부터 고교생까지 학습 부진, 학교생활 부적응 등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위탁 기관으로, 올해 총 95명의 학생을 교육했다.

조 사무국장은 "학생들이 의사소통할 때 쓰는 표현이 코로나 이전보다 단순해지고, 수업을 따라가는 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취약계층 청소년들이 전자기기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지 않는 것도 문해력 수준을 높이지 못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일반 가정 자녀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원격 수업을 하면서 전자기기에 더욱 익숙해졌고,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줄 안다.

반면 집에서 학업을 돌봐주는 보호자가 없는 취약 계층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대부분 게임기로만 사용하고 검색 기능은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조 사무국장은 "이러한 아이들은 전자기기로 학습하며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 나가는 수준에 이르기 어렵다"며 "그러다 보니 분별력과 판단력이 길러지지 않고 있어 성인이 됐을 때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해력 리포트] ③ 코로나 학습 단절, 취약계층 자녀에 더 가혹했다
◇ 단어 뜻 몰라 시험 접수 못 하고 아르바이트도 애먹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학생이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동사무소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경우, '세대원', '세대주' 등 기본적인 단어 뜻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도 나타난다고 한다.

17~24세 교육 소외 계층을 가르치는 대안교육기관인 '창창한'의 이직녀 교장은 "단어 뜻을 모르더라도 학습 경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학습 경험이 단절된 아이들은 기본적인 문해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창창한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다수 있는데, 원서에 나오는 일부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 시험 접수 자체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교장은 "검정고시에 떨어져 재시험을 보는 경우 기존에 합격한 과목은 별도로 체크해야 재응시 접수가 되는데, '기합격'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 시험 접수를 못 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장은 "가정환경이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취약 계층 청소년은 부모와 학습에 대해 소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스스로 학습 방법 등을 판단해야 해 어려움이 크게 가중됐다"고 덧붙였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활동이 없어지자, '은둔형 외톨이'(집에만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은 사람)에 나타나던 의사소통 문제점이 취약 계층 청소년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부은희 대표는 "취약 계층 청소년 30여 명에게 노동 실태를 조사해보니 코로나 이전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주문 접수, 서빙 등 단순 노동을 했다면 코로나 이후에는 배달이 크게 늘면서 배달 기사, 업주, 손님 사이에서 소통하는 역할이 커졌다"며 "문해력이 약한 아이들은 일하면서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 잦은 실수를 했고, 해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문해력 리포트] ③ 코로나 학습 단절, 취약계층 자녀에 더 가혹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에게 문해력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해 수준이 사회에 진입해 자립할 수 있느냐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부 대표는 "취약 계층 청소년이 배움을 포기하면 성인이 됐을 때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이들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취약계층이 가장 큰 피해"…문해 수준에 맞춘 눈높이 교육 필요
그런데 취약 계층 학생을 지원하던 교육기관 교사들이 코로나 사태로 학생을 직접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자, 대면 수업이 재개된 이후에도 기관을 찾는 청소년이 이전보다 적어졌다고 한다.

부 대표는 "대면 수업이 중단된 뒤 집에만 있으면서 은둔형이 된 아이들이 기관에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다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취약 계층 청소년을 위한 학습 방법도 코로나 전과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조명애 사무국장은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복합적으로 하면 어려워하기 때문에 쉬운 단어를 사용해 간단하게 해야 한다"며 "청소년의 문해력은 부모, 교사, 친구와 상호작용을 통해 사고력이 확장되면서 길러지는데, 많은 취약 계층 청소년이 코로나 이후 이런 훈련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문해력 리포트] ③ 코로나 학습 단절, 취약계층 자녀에 더 가혹했다
이직녀 교장은 "이런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형성해주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단어 뜻과 학습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며 "기본적인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은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취약 계층 청소년의 학습 손실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은 문해력 수준이 낮아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에게 개별 지도 교사를 붙여주고, 지도 교사는 담당 학생이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내용이 있으면 옆에서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교과별 교사들은 학습 부진을 겪는 학생을 파악해 개별 지도 교사를 지원한다.

부 대표는 "독일에서는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에게 교사가 집중적으로 질문하고 학생이 아는 만큼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며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계속 발표하려고 하면,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의 학습 기회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문해 수준이 낮은 학생에게 전 교과에 걸쳐 교사와 소통을 하며 실력을 향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기존에 학습 부진을 겪고 있던 취약 계층 아이들이 코로나 이후 가장 큰 피해를 봤다"며 "전 교과목에서 지식 전달 수준을 넘어 토론과 읽기 등을 통해 학생들의 문해력을 길러주는 등 맞춤형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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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