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고(故)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17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1
상사의 지속적인 성추행과 은폐·회유 등 2차 가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가 생전에 남긴 메모가 법정에서 처음 공개됐다.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 17일 군인 등 강제추행치상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공군 장 모 중사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9년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다음 날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메모도 공개됐다. 메모에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내가 여군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남자였다면 선·후임으로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피해자인 자신을 도리어 자책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내가) 왜 이런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지 뼛속부터 분노가 치민다. 이 모든 질타와 비난은 가해자 몫인데, 왜 내가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지. 나는 사람들의 비난 어린 말들을 들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해당 내용들을 미뤄 이 중사는 성추행 피해를 신고하면 자신이 비난 혹은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판부가 선고한 징역 9년형은 당초 군검찰의 구형보다 낮다. 군검찰은 지난 10월 8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장 중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한 바 있다.

6년이나 낮게 형이 선고된 것은 재판부가 군검찰의 기소 내용 중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문자메시지 등을 보낸 사실에 대해선 특가법상 보복 협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간 장 중사는 강제 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보복 협박 혐의에 대해선 협박이 아닌 '사과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해당 메시지는) 피고인의 자살을 암시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의 이후 선임·남자친구와의 대화나 문자메시지에서 피고인의 자살을 우려하는 모습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피해자의 죽음을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해도 추행으로 인한 정신적 상해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주요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며 "죄질에 상응하는 엄중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