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중심의 3당 연립정부 출범으로 16년 만의 정권교체를 마무리했다. 사민당 소속 올라프 숄츠 신임 총리의 정치행적과 취임 일성을 보면 지금은 ‘좌 성향 실용주의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끈 보수우파 기민당에서 색깔 차이가 분명한 3개 정파의 연립정부로 정권이 넘어가는 과정이 나라 밖에서 보기에는 순조롭고 무난해 보인다. 거칠고 혼탁한 한국 정치판과 비교하면 부러움마저 든다. 안정되고 성숙한 정치로 고도화된 경제를 만들어가는 독일이 그냥 ‘유럽의 강자’가 된 게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막 출범한 ‘숄츠 연정’이 어떤 정책을 펴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먼저 연금시스템 보완이 있을 것이라는 현지 전망을 보면 ‘미래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최저임금 인상 공약이 바로 시도될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친(親)중국 행보를 보인 메르켈과 달리, 중국과 관계 재정립 등 외교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유럽연합(EU)에서 비중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는 단순히 EU에 국한된 변수가 아니다.

16년 만에 정권이 교체된 독일 정치는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는 한국 정치에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보다 정치가 성숙돼 집권 정파가 바뀌더라도 대내외 정책에서 왔다갔다하는 ‘스윙 폭’이 크지 않다. 이는 국가의 지속성과 안정성의 문제다. 단순히 정당 역사가 오래된 때문이 아니라, 정치인들 자질과 정치문화 요인이 클 것이다. 정당마다 정강이 분명하고 추구하는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그래야 선진 정치다. 좌우·보혁에 따라 각론에선 차이가 나더라도, 국가 운영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국익에 관한 한 여야의 공약수가 많을수록 바람직하다. 퇴행의 한국 정치는 공약수가 극히 미미한 데다 매사에 물과 기름 같고 흑백논리가 판친다. 그렇게 극한 대립으로 치달으니 통합과 협치도 늘 말뿐이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진화하는 유럽 좌파정당들의 현실감각이다. 독일뿐 아니라 북유럽 ‘노르딕 좌파’들도 끊임없는 변신으로 ‘스마트 좌파’라는 평가를 받은 지 오래다. 숄츠 총리가 2002년 사민당 사무총장 때 독일 노동시장의 틀을 바꾼 ‘하르츠 개혁’을 지지하면서 전통적 사회주의와 거리를 뒀다는 고백은 유럽 좌파의 대표적 변신 사례일 것이다.

이런 유연한 변신과 자기혁신을 한국의 자칭 진보·좌파는 어떻게 보고 있나. 툭하면 철 지난 원시사회주의 이론을 들고나오는가 하면, 검증도 안 된 모험적 주장을 정책이라고 내놓기 일쑤다. 위헌적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수구·꼴통’이라는 비판이 따라붙는데도 기득권 놀음에 빠진 채 퇴보를 일삼는다. 공부 않고 고민 없기는 자칭 보수·우파도 다를 바 없다. 독일을 보면 정치 선진화 없이는 경제성장과 사회안정도 요원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