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전을 기반으로 한 탄소중립 달성 계획을 공식화해 주목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그제 ‘2050 탄소중립 목표달성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원전을 태양광 풍력과 같은 ‘무공해 전력’으로 공식 분류하고, 투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미국 산업 생태계는 물론 오는 22일 원전을 친환경 전력으로 분류할지 여부를 결정할 EU 집행위원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미국이 원전을 무공해 전력으로 ‘못박고’ 나선 까닭은 분명하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h당 10g으로 태양광(57g)의 20%도 안 된다. 또 원전 없이 탄소 넷제로를 달성하면서 에너지 안보, 환경 보호, 경제적 부담까지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뿐 아니라 비(非)원전국인 세르비아 카자흐스탄까지 원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원전은 이념이 아니라 수학의 문제”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전력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RE100’ 선언에서 에너지원에 원자력을 추가한 ‘CE(Clean Energy)100’ 선언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만 끝까지 ‘탈원전-탄소중립 병행’ 고집이다. 어제도 청와대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 1주년 기념식이 있었으나 탈원전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대신 2023년부터 대기업의 태양광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총 94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만 발표했다. 임기를 5개월도 채 안 남긴 정부가 중기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그렇고, 주요국들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 투자로 돌아서는 마당에 끝까지 탈원전 아집을 꺾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다. 더구나 한국은 가동 중인 원전만 제대로 운행해도 별도 투자 없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와 있는 터다.

다행스럽게도 다음 정부를 이끌겠다고 나선 대선 후보들은 현 정부와는 다른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탈원전 정책 재고를 시사하며 “한번(신한울 3, 4호기 건설) 중단 결정하면 후퇴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벽창호”라고 말하고 있다. 현 정부는 재앙과 같은 탈원전 ‘대못박기’를 중단하고, 남은 논의를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