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인사들이 미국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에 불참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어제 “평창, 도쿄,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동북아 릴레이 올림픽이고 상당히 의미가 있다”며 “직전 주최국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제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한 연장선상이다. “아직 어떤 결정도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무게추는 보이콧 불참으로 기운 듯하다.

지금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를 낼 때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보이콧을 선언하며 문제 삼은 것은 중국의 인권 탄압이지만, 실제로는 자유민주 진영의 대(對)중국 포위망 구축이다. 어제 110개국 정상을 초청해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다. 외교적 보이콧이 첨예한 미·중 갈등의 꼭짓점이 된 마당에 우리 당국자들의 발언은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당장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높이 평가한다”며 한·미 사이를 파고들었다.

정부가 올림픽 외교에 매달리는 것은 남북한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이벤트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물 건너갔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 보면 딱하다. 더욱이 미 연방 하원의원 35명이 “북핵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서한을 백악관과 국무부에 보내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된 마당이다. 서한 내용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은 비핵화 협상의 입구이며 상징적”이라고 반박했다. 종전선언은 더 이상 무력 위협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 없이는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북한은 도발을 일삼는 판이다. 북한은 한·미 훈련 폐지, 미 핵우산과 전략자산 철수도 내걸고 있다. 한·미 동맹 와해를 노리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의도와 함께 자유민주 진영이 급속도로 보이콧 결속을 하고 있는 정세를 냉엄하게 읽어야 한다. 미국은 “동맹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하지만, 인권 등 보편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다른 길로 가다간 ‘국제 보이콧’을 당할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중국 열병식에 자유민주국가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시진핑 주석과 톈안먼 망루에 오르면서 동맹국의 불신을 산 사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러고도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사드 보복’이었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