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특정 코인이 하루 만에 수십 % 올랐다가 이튿날 더 큰 폭으로 떨어지는 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변동성이 심하지만 투자자들이 참고할 만한 자료는 많지 않다. 데이터리퍼블릭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암호화폐 시세의 방향성과 변동률을 예측해 투자 리스크를 덜어주고 있다. 미국과 유럽, 홍콩, 싱가포르 등의 6개 헤지펀드를 고객사로 두고 있는 B2B(기업 간 거래) 스타트업이다.

데이터리퍼블릭 "널뛰는 코인 시세 AI로 예측"
엄성민 데이터리퍼블릭 대표(사진)는 9일 “코인이나 NFT(대체 불가능 토큰) 등 블록체인 자산 가격이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를 30분 후부터 1주일 후 단위까지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향뿐 아니라 변동폭이 얼마나 될지도 함께 서비스하고 있다. 엄 대표는 “예측률은 50%대 후반에서 높게는 60%대까지 나온다”며 “시계열 금융 데이터는 예측률이 51~53% 정도만 돼도 굉장히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라고 설명했다.

데이터리퍼블릭은 강(强)인공지능(AGI) 기술을 활용해 예측 알고리즘을 사람이 아니라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들어낸다. 가격과 거래량, 오더북 등 시장에 공개된 정보들을 재가공한 데이터를 AI 학습에 적용시킨다. 모두에게 공개된 자료만으로 어떻게 코인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엄 대표는 “‘데이터 가치 정량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며 “소고기에 등급을 매기듯 여러 데이터 중에서 미래를 예측할 때 유용한 데이터만 선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A 코인의 다음달 시세를 예측하려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 코인의 일·주·월별 가격 및 거래량, 오더북 등 마이크로 지표와 전체 코인의 시세 동향 같은 매크로 지표 등 여러 자료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A 코인의 미래를 예측할 때 ‘쓸모 있는’ 데이터만 추려 AI를 학습시킨다. 2018년 데이터리퍼블릭을 설립한 엄 대표는 2019년 이 같은 데이터 정량화 기술 개발을 마치고 지난해 베타테스트를 거쳐 올 3월 암호화폐 예측 서비스를 시작했다. 관련 특허도 20여 개 보유하고 있다.

엄 대표는 “바둑같이 룰이 변하지 않고 상대방이 무슨 수를 뒀는지 뻔히 보이는 문제를 AI로 해결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작업”이라며 “스타크래프트처럼 게임의 규칙은 변하지 않지만 타인의 플레이가 보이지 않으면 난도가 올라간다”고 했다. 금융시장처럼 외생변수가 보이지 않는 데다 규칙도 간혹 변하는 영역이 예측하기 가장 어렵다는 설명이다. 데이터리퍼블릭은 암호화폐뿐 아니라 달러 유로 등 외환시장 미래를 예측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탈중앙금융(디파이) 거래소와 NFT 플랫폼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데이터리퍼블릭은 현재까지 글로벌 기술 분야 벤처캐피털(VC)인 SOSV와 현대자동차 등으로부터 2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헤지펀드가 암호화폐 관련 펀드를 조성할 때 참여해 수익을 공유하는 게 데이터리퍼블릭의 수익 모델이다. 국내에서 암호화폐 관련 규제 틀이 제대로 잡히면 한국 기관투자가들에도 예측 서비스를 판매할 계획이다.

1985년생인 엄 대표는 승려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유년시절 ‘과학 영재’였던 그는 미국의 한 공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하고 귀국해 20대 때 수년간 승려 생활을 했다. 세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속세로 다시 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AI와 응용수학 등을 공부했다. 유럽의 AGI 전문연구소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회사를 창업했다.

엄 대표는 “암호화폐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리스크를 헤징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에 착안해 이 서비스를 내놓게 됐다”며 “암호화폐 시장에 씌워진 ‘음성적인 투자’ 딱지를 없애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