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저축은행 점포에서 소비자가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허문찬 기자
서울의 한 저축은행 점포에서 소비자가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허문찬 기자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심각한 불황에는 가계 부채가 급격하게 쌓이고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이 선행했다. 대공황과 대침체도 이런 역사적 각본을 충실하게 따랐다."

2014년 국내에 출간된 명저 '빚으로 지은 집(부제 가계부채는 왜 위험한가)'가 재차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6일 취임한 박기영 신임 한은 금융통화위원이 번역한 데다 최근 한국 경제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분석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책을 발간한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아티프 미안 교수 등은 불어난 가계 부채가 자산가격 조정과 맞물려 가계 씀씀이를 옥죄면서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한국 가계가 내년에 갚아야 하는 이자비용이 60조원을 돌파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3년물 국고채(국채) 금리가 1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장금리가 매섭게 오르는 만큼 이자비용 충격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계를 짓누르는 '빚 폭탄'이 씀씀이를 옥죄고 한국 경제를 불황으로 몰고갈 변수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3년 국채금리 2% 갈수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일 대표 시장금리로 통하는 3년물 국채 금리는 0.069%포인트 오른 연 1.719%를 기록해 2019년 5월 13일(연 1.721%) 이후 2년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최저치인 지난 1월 5일(연 0.936%)보다 0.5%포인트 이상 뛴 것이다. 이날은 3년물 국채 금리가 소폭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돈줄'을 죌 것이라는 전망에 시장금리 오름세는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10월과 11월에 연이어 한은이 금리인상을 할 수 있다"며 "이처럼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지면 3년물 국채 금리가 내년에 연 2.0%까지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투자증권이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추정한 결과 내년 가계 이자비용이 66조원으로 추산됐다. 올해 가계 이자비용 추정치(56조~59조원)와 비교해서도 7조~9조원 불어난 금액이다. 한은이 관련 집계를 작성한 후 최고치를 기록한 2018년(60조4000억원)을 웃돈다. 치솟는 금리를 반영할 때 가계가 상환할 이자비용은 이를 웃돌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가계부채씀씀이 억제장기불황

불어난 가계부채·이자비용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박기영 금통위원은 '빚으로 지은 집'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에서 "부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우려가 커지는 동시에 세계 경제가 침체 터널로 재진입하는 조짐도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백신 접종 속도가 더뎌지면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당초 전망치(6%)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악의 전력난을 겪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줄줄이 하향조정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8.2%에서 7.8%, 노무라 증권은 8.2%에서 7.7%로 각각 내렸다.

침체의 그림자는 한국에서도 포착된다. 8월 전산업과 서비스업 생산이 전달과 비교해 각각 0.2%, 0.6% 하락하는 등 주요 경기지표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발표한 '10월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는 대면서비스업 부진으로 회복세가 둔화한 데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도 확대되면서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KDI는 이어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업종의 중간재 수급 불안과 물류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며 "미국의 통화정책과 중국 기업부채에 대한 우려가 향후 제조업의 회복 흐름을 더디게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