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친환경 전환, 기업 혼자 못해"…정부 "사업재편 맞춤 지원"
디지털과 친환경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려면 고부가가치 원천기술 확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선 기업과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특히 탄소중립을 염두에 둔 사업 재편 땐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 기업계의 목소리다. 이와 함께 사업 전환을 위한 투자 때 정책금융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 같은 분석과 제안은 한국경제신문과 산업통상자원부가 ‘포스트팬데믹 시대의 사업 재편 추진방향’을 주제로 30일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서 함께 연 특별 좌담회에서 제시됐다. 박준동 한국경제신문 정책·국제부문장 겸 경제부장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엔 박진규 산업부 차관을 비롯해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김진웅 크리설릭스에너지 벤처캐피털 파트너, 송경순 전 한국전문가컨설팅그룹 대표가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포스트팬데믹은 언제쯤 가능한가.

▷박진규 차관=
백신 접종 속도가 빠르다. 10월 말이나 11월께부터는 단계적으로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방역정책을 계속 펼치는 가운데 경제활동도 점차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전히 어려운 시기이긴 하지만 힘을 모아서 국가적 전환 과제를 추진해 나가야 할 때다.

▷사회=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송경순 전 대표=
탄소중립은 지금까지 투자를 해도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분야였다. 공공 영역에서만 다뤄졌던 이유다. 하지만 유럽은 앞으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의 제품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탄소중립 분야에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심각한 재무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시대 전환에 따른 비용과 이익 관련 정보를 여러 경로로 기업에 전달해야 한다.

▷박 차관=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은 포스트팬데믹 시대의 대표적인 산업 트렌드로 정착하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성장성에도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올해 사업 재편이 승인된 51개 기업 중 42개 기업이 탄소중립·디지털 전환 분야다. 정부도 이 두 가지 트렌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활력법 개정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진웅 파트너=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전환의 속도가 빨라졌다. 세계 다국적 기업은 이미 10년 전부터 전환을 준비해왔다. 이제 디지털 전환 및 친환경 트렌드와 동떨어진 산업은 성장의 모멘텀을 찾기 어렵다. 한국은 전략적으로 패스트팔로어 전략을 통해 성장한 국가다. 그래서 원천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이제 원천기술 확보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고위험 고수익 전략을 추구할 때가 됐다. 국가 단위에서 힘을 모아 추진해 볼 과제다.

▷사회=사업 재편은 어떻게 추진돼야 하나.

"디지털·친환경 전환, 기업 혼자 못해"…정부 "사업재편 맞춤 지원"
▷박 차관=기업이 소멸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자본잠식 등 재무적인 실패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전에 사업경쟁력 약화라는 ‘기저질환’으로 먼저 위기의 징후가 나타난다. 기업이 도산하면 이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된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사후적 구조조정 못지않게 선제 사업 재편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자금, 연구개발(R&D), 컨설팅, 세제 등 패키지 지원을 통해 기업의 사업 재편을 돕는 이유다. 업종별 맞춤형 지원을 통해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도록 계속 제도를 정비해나갈 계획이다.

▷이정동 교수=사업 재편은 코로나와 관계없이 기업들이 반드시 이행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기업의 사업 전환은 사실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는 개입에 나서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전환의 과제가 국민 편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왜 정부가 개별 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가. 그 이유는 결국 기업의 사업 재편이 탄소중립 실천 등 국가적 전환 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전환의 관점에서 친환경 등 필요한 분야에 정부의 똑똑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성공적으로 사업을 재편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교수=
장기적 ‘인내자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꼭 필요한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고, 전환의 과정을 기다려주자는 뜻이다. 특히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등의 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선 장기적으로 자금을 대주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용펀드 설립,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한 자금 지원, 우대금리 적용 등 금융 혜택을 활용하는 게 하나의 방편이다. 한국 금융시장이 수익성에 몰두하면서 전환과 혁신에 필요한 인내자본의 씨앗이 말라서는 안 된다. 정책금융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송 전 대표=사업 재편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노동경직성 해소다. 이를 그대로 두고는 선제 산업 재편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힘들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 세계가 발 빠르게 산업 트렌드 전환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만 노동경직성에 발이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김 파트너=정부가 이끌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따라오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성공 사례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사업 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이 나오면 나머지 시장은 성공의 경로를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인력 재배치 문제도 전환의 중요한 과제다.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기존 인력이 스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정부와 기업이 협업할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사업 전환 관련 정책에서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

▷박 차관=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인센티브는 자금, R&D, 세제, 컨설팅으로 좁혀진다. 지난 7월 이 네 가지를 중심으로 인센티브를 강화했고, 업계와 소통해 인센티브 체계를 더 보완·발전시켜나갈 생각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사벨라 스페인 여왕이 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무역이익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해 정부는 기업의 사업 재편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한국의 산업 포트폴리오 내 신산업이 더 다양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이지훈/사진=김병언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