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인터뷰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치아 6개와 바꾼 작품이다. 10년도 전부터 기획해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그땐 "너무 살벌하고 낯설고 난해하다"면서 거절당했던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으로 제작돼 세계인의 마음을 홀렸다.

'오징어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게임 종목은 70년대, 80년대 대한민국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흔히 하던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구슬치기, 오징어게임 등으로 이뤄졌다.

'K-골목길 게임'을 목숨 걸고 하는 참가자들의 사연에 세계인들은 환호하고 있다. 넷플릭스 서비스 국가 83개국 중 80개국에서 1위를 차지한 '오징어게임'은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뽑기 등의 게임을 패러디한 영상이 봇물이 터질 만큼 화제가 되고 있다. 해외 유명 매체들도 '오징어게임' 흥행 비결을 분석하면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오징어게임'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황동혁 감독은 "이렇게 인기를 얻을지 몰랐다"면서 얼떨떨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미 10년 전에 기획했고, 당시엔 퇴짜 맞았던 아이템이었다"면서 "10년 만에 이 아이템이 수용될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게, 세상이 바뀐 거 같다"고 담담하게 심경을 전했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 '오징어게임'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인기 비결이 뭘까.

이렇게 인기를 얻을지 몰랐다. 얼떨떨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있다. 비결은 '심플함'인 거 같다. 놀이가 심플하고, 다른 게임 장르와 다르게 서사가 자세하다. 이입도와 몰입도가 높은 점이 사랑받는 이유 같다.

▲ 해외 시장을 겨냥한 부분이 있을까.

글로벌 마켓을 겨냥한 건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라는 부분이었다. 방탄소년단이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봉준호 감독 '기생충'도 그렇고. 이 게임이 어떤 소구력이 있을까 기대하면서 작업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진 예상 못했다. 농담처럼 저희끼리 "'킹덤' 끝나고 '갓'이 비싸게 팔렸다니까, 이거 인기 끌면 달고나 장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는데 그게 실제로 일어나서 얼떨떨하다.

▲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이자 최고 콘텐츠 책임자(CCO) 테드 사란도스는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공식 순위를 공개하지 않아 얼마나 잘됐는지 감이 안 왔다. 그런데 대표님들이 나와서 그런 언급을 해줘서 놀라웠다. 이왕 이리된 거 진짜 가장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

▲ 장르의 유사성 때문에 표절 논란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게임보다는 사람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다른 게임 장르물은 게임이 어렵고 복잡해서 천재 같은 주인공이 나와 진행이 된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아이들 게임이라 단순하다. 전 세계 남녀노소 누구나 30초 안에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똑같은 이유로 다른 작품은 1명의 영웅을 내세워 위너가 되는 과정을 다루는데 '오징어게임'은 루저의 이야기다. 천재도, 영웅도 없다. 기훈(이정재)도 타인의 도움을 통해 이겨내는 거다.

▲ '오징어게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낯설고 난해하다고, 살벌해서 안 된다고 그랬다. 그런데 10년 만에 그게 수용 가능한 살벌한 세상이 됐다. 슬프게도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다. 요즘은 아이들도 다 게임을 하지 않나.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게임에 열광한다. 또 요즘은 코인, 부동산, 주식 등 모두가 일확천금을 노리는데 그걸 노리는 게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주시는 거 같다.

▲ 놀이구성은 어떻게 기획했나?

10년도 전에 짜 놓은 구성이다. 그때부터 첫 게임은 무조건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로 시작해서 대량 학살로 충격을 준다는 거였다. 수백 명이 모여서 게임을 할 때 기이하면서도 몰입감을 줄 수 있는 게임 같았다. 마지막은 오징어게임으로 설정했다. 그 도형 안에서 검투사들의 대결 같은, 오징어게임판을 링처럼 사용하고 싶었다. 어릴 때 했던 가장 격렬한 게임이라 그걸 마지막에 해야 할 거 같았다.

▲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 중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게임은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상징적인 건 유리 다리 건너기다. 이건 전통 게임은 아니다. 어릴 때 개울 건널 때 돌을 잘못 밟으면 흔들려서 떨어지지 않나. 거기서 착안했다. 앞 사람이 희생해야 뒷사람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거다. 이 사회 승자가 폐자 위 시체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고, 그 희생자를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가장 중요했다.

▲ 마지막에서 기훈의 머리색이 달라졌다.

게임을 마친 기훈이 정상으로 돌아가려 노력하는데,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기훈이라면 미용실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절대 평소에 하지 않았을 짓을 할 거 같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미친 짓이 빨간머리 같았다.

▲ 부자가 서민을 데리고 노는 게임이라는 콘셉트는 어디서 영향을 받았나.

이런 장르에서 클리셰처럼 등장하지 않나. 제가 처음 기획할 때 만화를 많이 봤다. '라이어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이런 만화를 많이 봤다. 빚이 있는 사람들을 게임에 참여시켰기 때문에 비슷한 전제가 등장하고, 이건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등장한다.

▲ 세트와 의상 등 미술 구성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었을까.

보통의 작품은 레퍼런스가 존재해서 그걸 변경해서 만드는데, 이번엔 거의 상상에 의지해 만드는 게 힘들었다. 미술 회의를 정말 많이, 길게 했다. 횟수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구슬치기는 일남(오영수)이 아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들었고, 지켜보는 느낌이 들도록 계단을 만들고 세트장도 그렇게 구성했다.

▲ 출연자들이 지내는 공간 벽에 모든 게임이 다 소개돼 있다는 게 뒤늦게 알려졌다. 이렇게 만든 의도가 있었나.

그 벽그림도 갑자기 떠올랐다. 게임적인 비밀을 숨겨놓으려 했다. 경쟁을 하며 서로 쳐다보기 바빠 벽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거다. 그런데 벽을 보면 모든 비밀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오싹한 전율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숨겨놓았다.

▲ 연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일까.

이건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현실성이 떨어져서 소수의 마니아만 즐길 수 있는 이야기가 돼 버릴 거 같더라. 그래서 전 현실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게임의 판타지와 현실성을 모두 구현하는 게 제가 신경을 많이 쓰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 극 중 기훈은 쌍용차 해고자를 연상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쌍용차 사건 자체가 참고 자료가 된 건 맞다. 기훈이라는 인물을 쓸 때 뉴스를 많이 접했고, 그 후에도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평범했던 기훈의 인생이 어떻게 그렇게 바닥이 됐을까 생각했을 때, 그 사건을 참고로 삼아 시작했다. 그걸 읽어준 분들이 있는 거 같아 감사하다.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느 순간에 기훈과 같은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잘 다니던 회사가 도산하거나 해고당할 수 있다. 그 후에 자영업을 하다가 망할 수 있고. 지금도 많은 자영업자가 코로나 때문에 힘들지 않나.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 '오징어게임'이 정치권에서도 많이 언급되고 있다. 부담은 없나.

감독이, 창작자가 창작물을 세상 밖으로 내놓으면 그건 손 밖으로 떠난 거다. 그걸 수용자들이 이용하는 걸 뭐라 할 수 없다. 국회의원 아들이 자신을 말이라고 언급하고, 허경영 씨가 이용하고, 이걸 제가 언급할 부분은 아닌 거 같다. 거기에 입장을 내는 건 창작자로서 태도가 아닌 거 같다.

▲ 왜 456억 원일까.

처음에 기획할 때 참여 인원이 1000명이었다. 1000명에 1000만 원씩 100억 원이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100억 원이 작은 돈이 돼 버렸다. 상금을 올리려고 했고, 로또 당첨금 중 가장 큰 금액이 400억 원 정도더라. 그래서 1명당 1억 정도로 책정하고 기억하기 쉽게 중간인 456억 원으로 했다.

▲ 일각에서는 한미녀(김주령)가 육체를 재화로 삼는 설정, 보디프린팅 된 여성의 도구화 등 젠더감수성 부재를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한미녀가 몸을 도구로 삼는 게 아니라 극단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비하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보디프린팅은 보시면 여성의 도구화가 아니다. VIP가 사람을 어디까지 경시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해 보여주려 한 거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있다. 여성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했다는 게 맞을 거다.

▲ 극의 설계가 '중년 남성'의 향수를 자극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중년 남성의 향수라기보단 제가 중년이라 저의 어릴 적인 보편적인 기억을 꺼냈다. 이걸 남성에 맞춰 썼다고 할 수 없을 거 같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사진=넷플릭스
▲ 처음으로 넷플릭스와 작업했다.

'오징어게임'은 2018년에 다시 만들기로 결심했다. 넷플릭스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이걸 어딜 가서 이런 예산으로 이렇게 높은 수위로 만들 수 있을까. 지상파나 케이블 드라마로 할 수 없고, 영화로도 맞지 않고. 이 분량, 이 소재, 이 형태로 만들 수 있는 곳은 넷플릭스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하는 것이 주는 큰 이점이 있더라. 일주일 만에 큰 반응이 온 것이 놀라웠고, 최고의 선택 같다.

▲ 극 중에 노출된 전화번호 사용자가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계좌번호 역시 실제로 존재했었고.

전화번호 피해는 예상하지 못 했다. 없는 번호라고 해서 썼다. 회사 팩스 번호라고, 안전한 번호라고 해서 썼는데 이 상황이 벌어진 거다. 끝까지 자세히 체크를 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제작진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해결해 가려 한다. 피해를 입은 분들께 죄송하다.

통장번호는 제작진 중 1명의 번호였다. 그 친구거로 쓰기로 하고 했는데, 요즘 그 친구 통장에 456원이 자꾸 들어오고 있다고 하더라. 협의를 하고 썼지만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없애려 한다.

▲ 공개 초반 국내에서 나온 호불호 반응과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 사이의 온도 차이를 느꼈을 거 같다.

이번엔 반응을 안 봤는데 국내에서 그런 반응이 있다고 해서 알려주더라.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남녀노소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좋아할 작품을 만들겠다는 야심으로 제작했다. 그래서 속으로 '역시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구나' 생각했다. 외국에서는 좋은 반응이 나온다고 해서 '의도가 먹혔구나', '고맙다' 싶었다.

▲ 주요 배우들뿐 아니라 공유, 이병헌 등 특별출연 배우들도 쟁쟁했다.

공유 씨는 개인적으로 친하다. (홍 감독은 공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도가니'를 연출했다.) 그래서 개인적인 자리에서 기분 좋을 때 슬쩍 부탁했더니 바로 승낙을 해줬다. 그래서 하게 됐다. 그 캐릭터를 누가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딱지남'이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데 공유 씨가 딱 떠오르더라. 이병헌 배우도 '남한산성' 이후로 연락했는데, 좋은 자리에서 기분 좋을 때 슬쩍 물어봐서 승락을 받아냈다.

▲ 캐릭터 중 스스로와 가장 닮은 인물은 누구일까.

촬영할 땐 배우들이나 제작진은 찍을 땐 모든 설계를 하고 지켜본다는 점에서 일남이라고 하고, 평소에 모자쓰고 허름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기훈이라고 하고, 제가 서울대를 나와서 상훈 같이 냉정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 그런 저의 다른 모습이 다 섞인 거 같다.

▲ '오징어게임'을 포함해 다수의 한국 콘텐츠들이 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K콘텐츠만의 저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역동적이고 그만큼 경쟁도 심하다. 그 경쟁이 순작용을 하면서 문화적으로도 앞서가는 것들이 나오는 상황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 넷플릭스는 큰 인기를 얻어도 추가 수익이 없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아쉬움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웃음) 그런데 알고 시작한 거다. 알고 사인했다. 전 세계에서 오는 뜨거운 반응들이 창작자로서 너무 감사한 일이다. 제가 또 언제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거 같다.

▲ '오징어게임'은 감독으로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처음 한 시리즈였는데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뒀다. 평생 저에게 훈장이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작품이 될 거 같다. 뭘 하든 비교될 거고, 언급될 거다. 훈장이자 부담이다.

▲ 시즌2 계획은 있나.

1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쓰고, 연출하고, 제작하는 과정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당분간 '바로 갈 수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안한다'고 하면 난리가 날 거 같은 분위기라.(웃음) 머릿속에 떠올리는 그림들은 있는데, 이걸 하면서 하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그걸 먼저하고, 그 후에 넷플릭스랑 얘기를 해봐야 할 거 같다. 시즌1을 하면서 치아가 6개가 빠졌다. 임플란트를 했다. 시즌2를 하면 틀니를 할 거 같아 걱정이 되긴 한다.

▲ 시즌2는 어떤 이야기가 될까.

죄송하지만 노코멘트 하겠다. 아직 말씀드리기에 이르다.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거 같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