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수준에서 물질 제어를 가능하게 한 나노기술은 과학적 발견 외에도 인류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꿀 기술 개발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삶의 질 향상에서 나아가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시켜줄 정밀의학기술은 나노기술의 최종 목적지이기도 하다. 그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나노입자 기반 약물전달시스템의 현재와 미래를 통해 차세대 정밀의학 플랫폼을 전망해본다.
[Cover Story - OVERVIEW] 나노입자, 정밀의학을 이끄는 약물전달시스템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산모가 태아가 받을 영향을 걱정하며 항암 약물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왔다. 많은 사람이 항암 치료 과 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익히 들어봤을 것이다.

치료 약물을 암 조직에만 전달해 항암 작용을 하고 건강한 세포에는 해를 끼치지 않으면 될 텐데,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우리 몸 안에서 치료 약물을 병변 조직에만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술은 과연 언제쯤 실현 가능할까.

‘초소형 택배 상자’와 같은 나노입자를 활용한 약물전달시스템(DDS)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나노입자와 약물전달시스템

‘나노’는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기원한다. 1나노미터(nm)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 정도의 크기를 가진다. 나노입자는 일반적으로 수 nm에서 수 백 nm 수준의 크기를 가지는 소재를 일컫는다. 제작 과정과 원천 소재에 따라 구형, 박스형, 막대기형 등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할 수 있다.

나노입자를 이용한 DDS가 처음 제안된 것은 1960년대다. 지질나노입자(LNP) 내부에 약물을 담아, 혈액 내 순환시간과 안정성을 증가시킨 것이 시초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처음으로 제안되는 개념이라, 1995년에 이르러서야 FDA으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았다.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LNP가 주요 약물전달체로 개발됐다. 최근에는 모더나와 화이자에서 개발한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기능성을 가진 고분자 또는 무기물 기반 나노입자가 활발하게 연구됐다. 다공성 구조에 의한 약물 담지 효율을 높이고, 표면 화학 개질을 통한 세포 표적 특성 등으로 차세대 DDS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최근까지도 지속된 정밀 화학 소재 개발과 미세 구조 분석 현미경 기술 등의 발달로, 나노입자 연구에 힘을 싣고 있다.

더불어 각종 항암제와 항생제는 물론, 조직 재생을 위한 단백질과 펩타이드 등 생체 분자를 표적 전달하는 기술이 중개의학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기관에서 나노 입자 기반의 DDS에 대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생분해성 소재인 PLGA와 콜라겐 등 고분자 나노입자, 실리카, 산화철, 금 나노입자 등 무기물 기반의 콜로이드 나노입자에 대한 의학적 활용성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DDS는 일반적으로 담지하고자 하는 약물, 전달체로서의 나노입자, 병변 표적을 위한 표면 리간드(ligand)가 결합된 형태로 구성된다. 혈관 내 순환시간을 늘리고 면역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등의 보호막 화합물을 씌우는(코팅) 과정이 수반되기도 한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 화학 약물 외에도 유전 자 치료를 위한 DNA, siRNA, mRNA, CRISPR-Cas9 등 생체 분자를 안정적으로 담지해 표적 세포에 전달함으로써, 영구적인 치료가 가능한 유전자 질환 치료제가 차세대 정밀의학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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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개발의 패러다임 전환

일반적으로 신약 개발은 새로운 화합물 또는 생체 분자를 발굴해 질병 치료 효능을 향상시키는 인자를 찾는 것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이렇게 발굴된 치료제 대부분은 작동 원리상 우수한 치료 효율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서 효율이 떨어지거나 건강한 세포에 대한 부작용을 일으켜 난관을 겪는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표적 전달 효율에 한계점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최근 FDA 승인을 받은 아두카누맙은 뇌에 쌓인 아밀로이드베타 플라크를 효과적으로 제거해 인지 기능 저하 개선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2020년까지 진행된 임상에서는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체내 주입량을 10배가량 증가시켜 유효한 변화를 확인했다.

이에 대해 주요 이유 중 하나로 뇌 내 약물 전 달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뇌혈관장벽(BBB) 투과 효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 지목됐다. 이로 인해 유효한 치료를 위해서는 과도한 양을 투여하는 것이 요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키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나노입자 기반의 DDS는 이와 같은 신약 개발의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파급력을 가진다. 세포 수준에서 약물의 작동 원리 및 효능이 분명함에도, 임상에서 유효한 치료 가능성을 얻지 못해 사장된 많은 신약이 있다. 이들 신약에 병변 조직에 대한 표적 전달 효율을 높여 다시 한번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약물 전달체로서 나노입자는 일종의 플랫폼 기술로 적용이 가능하다. 이에 다양한 종류의 약물을 표적 세포에 전달할 수 있는 범용성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유전 질환 치료는 물론, 이미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각종 항암제와 항생제 등의 약물도 표적 전달 효율을 높여 투여량 감소 및 부작용 억제 등 기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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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입자 약물 전달체의 임상 활용을 위한 필요조건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나노입자가 의학적 활용을 위해 제안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체 내 주입용 나노입자는 생체영상 조영제 로 FDA 승인을 받은 몇 가지 외에 크게 주목할 만한 약물전달체가 없는 실정이다.

이는 아직까지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한 나노입자의 생체 내 거동 및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나노입자 자체의 물성에 의한 생리학적 상호 작용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FDA 승인을 받기 위한 규정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체내에 주입된 나노입자가 무해한 형태로 다시 체외로 배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나노입자 약물 전달체는 생분해 특성이 있는 소재로 제작되고 있다. 구성 원소 또한 대부분 체내에 존재하는 물질들이다.

대표적인 약물 전달체로 오래전부터 주목받고 있는 다공성 실리카 나노입자는 기공 구조 내부에 약물을 안정적으로 담아 ‘초소형 택배 상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표적 세포에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수용체에 대한 항체 또는 펩타이드 등을 나노입자 표면에 고정화해 ‘주소’에 맞춰 높은 ‘배송’ 효율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전달 후에는 생리학적 환경에 의한 생분해 반응을 거쳐 규산 이온 형태로 소변을 통해 배출된다. 일정 농도 수준의 규산은 이미 체 내에 존재하는 이온이므로, 무독성 생분해와 안전한 체외 배출이 검증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무기물 나노입자는 고유의 결정성(crystallinity) 또는 표면 특성에 의해 생분해 및 체외 배출 경향에 다소 차이가 있다. 이에 각 장기 조직 내에서 미세 환경 변화에 따른 생리학적 반응에 대한 추가적인 이해가 더 필요하다. 또 약물 전달체로서의 기능성 검증 외에도, 탑재한 약물의 방출 기작과 상호 작용에 의한 부작용 유발 효과 등에 대해서도 더욱 체계적인 분석을 거쳐야 한다.

대량생산 가능성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균일한 품질의 나노입자 생산은 또 다른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나노입자의 크기와 표면 특성에 따라 약물을 담는 효율과 생체 내 거동, 표적 기능성 등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연속 반응기 또는 미세 유체 공정 등을 통해 우수한 재현성과 균일도를 가지는 나노입자 제작법이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약물 봉입 후 보관 및 활성 유지에 대한 중요성도 지적되고 있다. 무기물 또는 고분자 기반 나노입자는 LNP에 비해 안정성과 대량생산 면에서 장점이 있어 차세대 DDS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외 연구현황 및 시장 전망

나노입자 기반의 DDS는 반세기 전부터 제안됐지만 아직까지 임상에서 활발하게 사용되지는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몇 가지 한계점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활발한 연구를 통해 조금씩 극복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마일스톤은 병변 세포에 대한 표적 효율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항암 약물을 암 조직에만 선택적으로 전달해 타 장기 및 태아에 대한 부작용 가능성을 낮추는 방법이다.

나노입자를 이용해 암세포를 표적하는 전략으로는 주로 활용되는 것이 나노입자 침투 유지 강화 효과(EPR 효과) 또는 능동 표적법이 다. EPR 효과는 종양 조직 혈관 구조의 틈새 특이성을 이용한 나노입자 침투 유지 강화 효과다. 능동 표적법에서는 암세포 특이 수용체에 대한 선택적 결합을 유도하는 항체 또는 펩타이드를 활용한다.

하지만 진행 단계가 높은 고형암의 경우에는 종양 조직 내부 깊숙한 부분까지 나노입자를 전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많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주입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노입자가 암세포 내부에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나노입자 DDS 연구의 과 제를 제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감염성 질환 매개체에서 나노입자 DDS가 나아갈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뚫고 침투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바이러스는 일종의 ‘살아 있는’ 나노입자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아데노 바이러스, 렌티 바이러스 등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질병 치료에 활용된다. 높은 효율로 세포에 침투해 유전자 편집 과정을 유도하는 것으로,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고유의 유전자가 인체 DNA에 삽입돼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염 위험 없는 바이러스’인 나노입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기작을 모사한 나노입자는 높은 효율로 유전자 치료제 또는 화학 약물을 표적 세포에 전달한다. 생분해 과정을 통한 무독성 배출로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인텔리아테라퓨틱스와 진에딧, 국내에서는 레모넥스, 카스큐어테라퓨틱스 등의 기업이 나노입자를 이용한 유전자 치료 및 약물 전달체를 개발하고 있다. 결국 유전자 치료 분야에서도 비바이러스성(non-viral) 나노입자를 전달체로 사용하는 것이 미래 지향적이고 임상 활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된 사회적 관심과 경제적 파급 효과를 반영한 시장 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라별로 정부 차원의 연구개발(R&D) 투자뿐만 아니라, 민간 투자 및 지식재산권 확보에서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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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명
나노-바이오 소재를 이용한 약물 전달과 진단, 생체영상 등 의생명공학 전문가다. 포스텍에서 화학공학으로 학사와 박사를 마친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박사후연구원,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조교수를 거쳤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