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가격은 올 들어 70%가량 치솟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유럽연합(EU), 미국 등 각국이 탄소 규제를 강화한 영향이다. 탄소배출권은 기업 등이 일정량의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로, 할당량 이상을 배출하려면 탄소배출권을 사서 메워야 한다. ICE 유럽 선물거래소에서 12월물 EU 탄소배출권 가격은 5월 초 사상 처음으로 t당 50유로를 넘어섰다. 올해 말 t당 가격이 110유로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르면 다음달 국내 개인투자자들도 탄소배출권에 손쉽게 투자할 길이 열린다.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에도 출시된다.
[단독]'녹색 원자재' 사볼까…내달 국내 첫 탄소배출권 ETF

국내 최초 탄소배출권 ETF 출격 준비

삼성자산운용, NH-아문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등은 탄소배출권 관련 ETF를 이르면 다음달 동시에 상장할 예정이다. 거래소에 상장심사를 신청했다.

이 ETF는 유럽이나 미국 혹은 두 시장의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으로 구성된 기초지수를 따라 수익을 내는 구조로 돼 있다. 개인투자자들도 주식처럼 간편하게 해외 탄소배출권 선물시장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 탄소배출권 ETF가 출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에서는 2008년 탄소배출권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가 출시됐다. 하지만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ETFS 카본 ETF(티커명 CARB)’는 상장폐지됐다. 초창기 탄소배출권 거래는 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거래량이 적었고 제도 미비로 공급과잉 상태에 빠지면서 ETF 수익률도 부진했다.

이후에도 한동안 탄소배출권 ETF는 나오지 않았다. 작년 7월에야 미국에서 ‘크레인셰어스 글로벌 카본 ETF(KRBN)’가 상장됐다. 수요가 폭발했다. 출시 1년 만에 운용 규모(순자산총액)가 5억달러를 돌파했다. 올 들어 지난 11일까지 수익률은 49.4%였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배출권은 보관 비용이 없어 원유 선물 ETF와 달리 롤오버(만기연장) 비용이 적다는 것도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선물 투자 상품은 만기가 다가오면 만기가 더 먼 선물로 갈아타야 하는데, 이때 보관 비용이 높으면 수익을 깎아 먹는다.

국내 탄소배출권 ETF 상장은 개인투자자의 갈증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인 유럽은 개인투자자 참여가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거래하려면 증거금 납부 등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 탄소배출권 선물시장은 2023년께 개장할 예정이다.

“EU 탄소 가격, 연말 t당 110유로”

탄소배출권 가격은 앞으로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각국 정부가 탄소배출권 공급을 억제하는 반면 코로나19 이후 경제활동이 늘어나면 탄소배출량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최근 폭염, 가뭄 등 이상기후 현상이 잇따르면서 탄소 규제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탄소 규제 강화 이면에는 중국에 대한 견제도 깔려 있다. EU 미국 등은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일종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최대 탄소배출국인 중국 기업들은 제품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EU는 탄소국경세를 탄소배출권 가격과 연동해 매길 계획이다. 탄소배출권 가격이 쉽사리 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또 다른 이유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의 탄소 및 유틸리티 연구 공동책임자인 로슨 스틸은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말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현재의 두 배인 t당 110유로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녹색 원자재’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탄소배출권 시장은 미국, 중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일종의 원자재가 된 탄소배출권은 2015년 1월 1일 이후 연평균 수익률이 37.8%로, 금(5.4%)과 원유(6.8%)보다 높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