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련'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난 삶의 아름다움
유머도 실수도 눈치를 봐야 하는 세상, 이보다 쿨하고 유쾌한 삶의 방식이 있을까. 한 번 결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여자, 미련이나 오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행동파 PD와 세상의 잡소리 따위는 한 귀로 흘리고 제 속도를 지키는 사유파 작가가 한지붕 아래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다.

책의 제목이 《호모 미련없으니쿠스》이니 짐작은 간다. 일상에서 미련 없이 떠나고, 타인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두 사람. 김진만 PD와 고혜림 작가 부부는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2009~2010)부터 ‘남극의 눈물’(2011~2012), ‘곤충, 위대한 본능’(2013), ‘곰’(2018~2019) 등을 함께 만든 명콤비지만, 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절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그동안 일로, 여행으로 다양한 곳을 경험하고 느낀 바가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개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늘 자유롭고 평화롭다. 때론 혼자 있음을 즐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이들에게 매이지 않아도 되니 아쉬울 게 없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사랑이나 우정 따위에 덜 아파해도 된다.

동네 편의점 가듯 험한 촬영지로 주저 없이 떠나는 김피디는 문명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원시 부족이 사는 방식, 인간의 규칙에서 벗어난 동물들의 생존 방식을 이웃집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그리며 깨달음을 전한다. 고작가는 눈물겨운 휴먼 다큐의 주인공들이 불행할 거라고 속단하고 동정하는 것도 무례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편을 가르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보자는 게 이들의 제안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폐쇄적인 이기주의와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저자는 이런 세태를 우려하며 ‘너무 진하지도 흐리지도 않은’ 회색 지대의 가치를 역설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공감이 간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