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사인했던 계약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가 받아야 하는 기본 배달료도 정확히 적혀 있지 않았다.
배달기사 B씨가 사인한 계약서에는 다른 배달대행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할 수 없다는 이른바 멀티호밍(multihoming·동시에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토교통부, 서울시, 경기도, 한국공정거래조정원과 합동으로 지역배달대행업체와 배달기사 간 계약서를 점검한 결과 이 같은 문제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고 22일 밝혔다.
배달대행업체는 생각대로·바로고·부릉 등 분리형 배달 대행 앱으로부터 배달기사 요청을 받고 기사들에게 업무를 배정한다.
정부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생각대로·바로고·부릉 3개사와 거래하는 약 700여개 배달대행업체 중 배달 기사 수가 50명 이상인 163곳을 대상으로 점검을 진행했다.
이들 업체로부터 업무를 받는 배달 기사 수는 약 1만2천명이다.
점검 결과 폐업·주소불명 등으로 인한 22곳을 제외한 141개 업체와 기사가 맺은 계약서에는 문제 조항이 수두룩했다.
계약서에는 사고 발생 시 귀책 사유와 무관하게 업체 책임을 완전히 면제하는 조항,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기간 제한 없이 계약해지 후 경업(경쟁업종)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
업체의 건당 수수료를 100∼500원 등 범위로 정하고 변동이 가능한 사유는 명시하지 않아 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배달 기사의 단순한 계약상 의무 위반이나 분쟁 발생을 이유로 통지나 항변 기회 없이 업체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도 발견됐다.
이에 정부는 기본배달료는 가급적 계약서에 명시하고 상황에 따른 추가금액을 지급하도록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계약서에 건당 수수료(율)를 명확히 정하고, 배달업무 수행 중 사고 발생 시 업체에 귀책 사유가 있다면 업체가 책임을 분담하도록 했다.
경업금지 의무는 인정하되 계약 기간에만 유지되도록 했고, 배달 기사가 여러 배달대행업체로부터 업무를 받아 수행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삭제토록 했다.
배달 기사의 단순한 계약상 의무 위반은 업체가 사전에 통지하고 시정·항변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고객 상대 범죄행위 등 계약 목적 달성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만 즉시 해지가 가능하게 했다.
점검 대상 업체의 76.1%인 124곳은 연내에 이 같은 내용으로 계약서를 자율 시정하거나 표준계약서를 채택하기로 했다.
표준계약서 채택과 자율시정을 모두 거부한 17개(10.4%) 업체에 대해서는 향후 불공정거래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한편 신고가 접수될 경우 다른 경우보다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관계 부처는 이달 27일 시행되는 생활물류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인증제 도입 및 표준계약서 보급 등을 통해 공정한 계약 관행 정착을 유도해나갈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