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엮은 '지존파 강력반장 고병천' 공개
웹소설 낸 '지존파 검거' 前강력반장…"경찰은 천직"
"소설에 나와 있는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경찰 후배들에게 '이런 방법도 있다'며 수사도 가르쳐주고, 나 자신의 자존감도 생각하면서 썼어요.

"
1994년 연쇄 살인조직 '지존파'를 검거하는 등 수많은 강력사건을 해결한 고병천(72) 전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이 이번엔 자신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웹소설 '지존파 강력반장 고병천'을 들고 왔다.

송파구 자택에서 만난 고씨는 "박사학위 논문을 받고 강의를 하다가 허리가 아파서 수술받고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며 후배들을 위해 '작정하고' 글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보통 경찰들이 맡는 사건은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내가 경험한 사건 중 의미 있는 것들로, 또 수사기법이 독특한 것들로 소재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공개된 논픽션 '지존파 강력반장 고병천'은 순경 시절 고씨의 첫 범인 검거부터 시작해 지존파 사건, 앙드레김 권총 협박 사건, 압구정 아파트 유괴 사건 등을 수사하는 과정을 담았다.

고씨가 직·간접으로 겪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탈옥수 신창원 사건 등 1990년대 유명 사건·사고와 각종 신문기사·통계·논문 자료 등을 인용해 당대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재현한다.

워낙 사실이 꼼꼼하게 기록된 덕분에 하나의 르포르타주로 읽히기도 한다.

고씨는 인터뷰 내내 "허구는 전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공동 저자인 이수경 작가가 고씨의 이야기를 듣거나 자료를 읽은 뒤 '팩트체크'를 하고, 이를 토대로 쓴 결과물을 고씨가 다시 검토하는 방식으로 집필이 이뤄졌다.

2009년 퇴직 직전부터 최근까지 10여년간 허리 수술을 4차례 했다는 그는 아픈 와중에도 작품을 위해 일주일에 1∼2회 4시간씩 2년 반 넘게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처음엔 종이책으로 낼 생각이었지만 플랫폼 측 제안으로 웹소설 형식을 택했다.

고씨는 "젊은이들이 웹에서 보는 건데 처음엔 자신이 없었다"면서도 "일단 반응이 좋으니까 고맙다"고 했다.

'지존파 강력반장 고병천'을 읽은 이는 11일까지 9만명이 넘었다.

웹소설 낸 '지존파 검거' 前강력반장…"경찰은 천직"
고씨는 작품 집필을 계기로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정리하면서 후배들에게 새삼 미안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내가 직원들을 너무 고생시켰구나 싶어요.

보통 한 팀에 저 포함 6명인데, 나는 봐주는 게 없거든. 그러니까 직원들이 원망했죠. '적당히 좀 하자'는 사람도 있었고. 또 위에선 일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계속 일을 시키고요.

"
하루 대부분을 재활훈련에 쓴다는 고씨는 "지금은 보조기기를 딛고서야 걸을 수 있는데 하루빨리 걷고 싶다"고 했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하는 꿈을 오래도록 간직해 왔다면서 "신춘문예에 한 번 응모해봐야겠다"며 웃었다.

1976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해 시작해 33년간 범인 잡는 형사로 살아왔던 고씨에게 '다시 태어나면 경찰을 또 할 생각이 있나'라고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답했다.

"대답하기 어렵네요.

그런데 만약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DNA를 갖고 태어난다면 해야겠죠. 그게 몸에 맞거든. 정신과 육체, 모든 부분에서 형사는 내게 천직이었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