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의 중고차 매매단지.  조재길 특파원
미국 뉴저지주 리틀페리의 중고차 매매단지. 조재길 특파원
“자고 나면 중고자동차 가격이 뛰고 있다. 20여 년 동안 차를 팔아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다.”

20일(현지시간) 중고차 매매업체 20여 곳이 거대 매매단지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주 북동부의 리틀페리. ‘그랜드 중고차’ 매장에서 만난 딜러 비토 씨는 요즘 시장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전했다. 그는 “원래 중고차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차와 한국차 외에도 포드, 크라이슬러 등까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했다.

또 다른 업체 밀란모터스의 대럴 케플 이사는 “지난 3개월 새 여기 중고차 가격이 40%가량 올랐다”며 “이달에만 15% 뛰었을 정도로 가파르다”고 혀를 내둘렀다. 인근 대형 업체인 카커넥션의 매물 대부분엔 아예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았다. 매장의 한 딜러는 “가격 스티커를 수시로 바꿔 달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확한 가격을 확인하려면 웹사이트를 참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매장에서 주행거리가 약 8만4500㎞(5만2500마일)인 2015년형 도요타 캠리 가격은 1만5500달러(약 1747만원)로 책정돼 있었다. 올초만 해도 동급 차량이 1만달러 초반 가격에 거래됐다는 게 딜러의 전언이다. 리틀페리의 중고차 단지 직원들은 하나같이 “모든 가격은 협의 불가”라고 못 박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더 뛸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중고차값 ‘이상 급등’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부족 현상이 꼽히고 있다. ‘반도체 공급 차질→신차 생산 중단→매물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 최대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는 돼야 신차 재고가 최적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플 이사는 “반도체 부족으로 신차가 제대로 안 나오니 중고차 경매 가격도 치솟았다”고 말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발생 후 차량 구매 수요가 꾸준히 늘어난 상황에서 전국적인 봉쇄령이 해제되자 여행 수요가 갑자기 늘어난 점 역시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자동차 가치 평가 사이트인 켈리블루북(KBB)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미국 내 중고차 매물은 총 234만 대로 1년 전보다 53만여 대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KBB의 맷 델로렌조 수석 편집장은 “미국 경제는 정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자동차 시장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가격 급등과 이에 따른 거래 부진 현상이 꽤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고차값 상승은 미국 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중고차값은 전달 대비 10%, 작년 같은 기간보다 21% 상승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상승 폭이다. 이런 중고차값 급등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물가상승률(4월 기준 4.2%)의 30% 이상에 기여했다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재고 부족에 따라 렌터카 대여 가격도 동반 급등세다. 렌터카 이용료는 지난 3월 31.2%(작년 동기 대비) 뛴 데 이어 4월엔 82.2% 폭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완성차 업체들이 허츠 엔터프라이즈 등 렌터카 업체들에 신차를 저가로 대량 공급하는 ‘플리트 판매’를 속속 중단한 데 따른 여파다. 줄리아 코로나도 텍사스대 교수는 트위터에 “작년 코로나19 충격을 받은 렌터카 업체들이 보유 차량을 대거 매각했지만 갑자기 반도체 사태가 터지면서 신차 확보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올여름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렌터카 예약이 어려울 정도”라며 “렌터카 하루 이용료가 국내선 항공료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