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화의 무역인문학] 우리나라의 박람회 역사
우리의 박람회 역사

우리의 박람회 참가 및 개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기록되어 있는 최초의 박람회는 1893년 미국이 콜롬버스의 미 대륙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여 처음으로 개최하였던 ‘콜롬비안 대 박람회’에 당시 조선 왕조 고종 황제의 특명으로 ‘정경원’이 한국관 관장으로 처음 참가하였다. 세계 46개국이 참가했던 시카고만국박람회에 조선부스는 ‘제조와 교양관(Manufactures and Liberal Arts Building)’에 위치하였다. 기록을 보면 면적이 899 평방 피트, 약 84제곱미터로 규모였다. ‘조선관’은 양면이 열린 코너에 위치하여 기와로 덮은 지붕이 특색을 보여주었다. 전시 물품은 자수 병풍과 도자기 등 수공예품을 비롯하여 남성 관복과 무인복, 갖신과 짚신 등 의복류, 찬장, 식기, 탁자 등 일상생활용품과 장기판, 연 같은 놀이기구 등 매우 다양했다. 이 박람회 참가자 대표였던 정경원(鄭敬源, 1841~?)이 고종(高宗, 재위1864∼1907)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이 중 천문발, 소라껍데기를 박은 장롱, 자수 병풍 등이 특히 인기를 끌었으며 상패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물품들을 통해 조선은 세계에 첫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말기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무기력하게만 당하다가 외부와의 연결을 닫은 채 망해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 말기 고종은 외국과의 연계를 통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이나 일제 치하에서는 주로 만주지역의 박람회에 간간히 참가했으나 활발하지는 않았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 1950년 시카고 국제박람회에 처음으로 수공예품 및 견직물 등 230점을 출품하였다. 이후 1962년 대한무역진흥공사 (KOTRA)의 설립과 더불어 전시 사업이 외무부 소관에서 코트라 주관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이후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제1차, 제2차 경제개발 계획이 성공함과 더불어 국제 박람회 참가 회수가 연간 40여 회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이때는 공산권지역에서 개최되는 박람회도 참가하여 북한과의 경쟁에서 남한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경제 외적인 효과도 중시했다. 한국 박람회의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이다. 1976년 설립되어 지속적으로 적자를 거듭하던 KOEX가 1983년부터 코트라 소속으로 전환됨에 따라 사업성 확보를 위하여 유망 전시회를 개발하면서, 전문적인 산업분야로서 전시 산업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이후 각 지방마다 관광 및 전시산업의 발전을 위한 전시장 설립이 이루어졌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수원 등지에는 대규모 국제 박람회를 유치할 수 있는 전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