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한때는 나도, 김지영

한때는 나도



김지영



한때는 바위였다고 얘기하지 마라


지금 돌멩이면 돌멩이로 사는 거다


아이들 손에 들린 짱돌이 되는 거다



한때는 돌멩이였다고 말하지 마라


지금 자갈이면 자갈로 사는 거다



한때는 자갈이었다고 애써 말하지 마라


지금 모래알이면 모래알로 사는 거다


뜨거운 백사장에서 몸을 뒤척이며,



한때는 무엇이었다고 생각도 하지 마라


한때는 나도 ……



[태헌의 한역]


一時吾人亦(일시오인역)



勿謂一時爲巖石(물위일시위암석)


今卽小石以石宅(금즉소석이석택)


甘作兒童手中石(감작아동수중석)



勿謂一時爲小石(물위일시위소석)


今卽石礫以礫宅(금즉석력이력택)



勿謂一時爲石礫(물위일시위석력)


今卽沙粒以沙宅(금즉사립이사택)


熱沙場上身轉側(열사장상신전측)



勿想一時有一席(물상일시유일석)


勿誇一時吾人亦(물과일시오인역)



[주석]


* 一時(일시) : 한때. / 吾人(오인) : 나. / 亦(역) : 또한, 역시.


勿謂(물위) : ~라고 말하지 마라. / 爲(위) : ~이다. / 巖石(암석) : 바위.


今(금) : 지금. / 卽(즉) : 곧, 곧 ~이다. / 小石(소석) : 작은 돌. 역자가 돌멩이의 의미로 쓴 한자어이다. /以石宅(이석택) : 돌로 살다. 돌멩이의 자격으로 살다. 여기서 ‘宅’은 ‘居(거)’의 의미이다. 이하 같다.


甘(감) : 달게, 기꺼이. / 作(작) : ~이 되다. / 兒童(아동) : 아이. / 手中石(수중석) : 손 안의 돌, 손에 들린 돌.


石礫(석력) : 자갈. / 以礫宅(이력택) : 자갈로 살다.


沙粒(사립) : 모래알. / 以沙宅(이사택) : 모래로 살다.


熱沙場上(열사장상) : 뜨거운 모래 마당 위. / 身轉側(신전측) : 몸소 뒤척이다, 몸을 뒤척이다.


勿想(물상) : ~라고 생각하지 마라. / 有一席(유일석) : 한 자리를 차지하다. ‘一席’은 하나의 직위(職位)를 가리키는 말이다.


勿誇(물과) : ~라고 자랑하지 마라.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말이다.



[한역의 직역]


한때는 나도



한때는 바위였다고 말하지 마라


지금 돌멩이면 돌멩이로 살며


달게 아이들 손 안의 돌멩이 되어야지



한때는 돌멩이였다고 말하지 마라


지금 자갈이면 자갈로 살아야지



한때는 자갈이었다 말하지 마라


지금 모래알이면 모래로 살아야지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몸 뒤척이며,



한때는 한 자리 있었다 생각하지 마라


한때는 나도……라고 자랑하지도 말고



[한역 노트]


이 시의 제목 “한때는 나도”와 꼰대스러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인 “내가 왕년에는~”은 표현만 다를 뿐 기실 같은 뜻이다. “나 때는 말이야”와 함께 젊은 세대들이 몹시 듣기 거북해 하는 말임에도 기성세대들은 생각보다 자주 이런 말을 하는 듯하다.


일부 기성세대들이 버릇처럼 즐겨 거론하는 ‘과거’는, 추억하기에는 좋은 장소가 될 수 있어도 머물 곳은 결코 못 된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자랑하며 으스대는 것은 그 순간에 머물기를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흘러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다. 그러므로 그 과거를 자신의 케렌시아(Querencia)로 삼는 것은 슬픔일 수 있다.


로마의 영광(榮光)도, 솔로몬의 영화(榮華)도 세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세월 앞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우리는 그 세월 앞에서 겸허해져야 하고 ‘지금 바로 여기’의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 이는 현실과 비겁한 타협을 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내가 만들었든 세월이 만들었든 지금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외면하며 끝없이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어리석음일 수 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생각은 저기에 있다면 누구나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본인만 괴로운 게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 괴롭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지금 돌멩이면 돌멩이로 살고, 자갈이면 자갈로 살고, 모래알이면 모래알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하여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를 거꾸로 읽어볼 필요도 있다. 자연계에서는 모래가 자갈이 될 수 없고 자갈이 돌멩이가 될 수 없고 돌멩이가 바위가 될 수 없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모래알과 진배없는 삶을 살다가 본인의 노력이나 특별한 계기 등으로 자갈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경우에도 모래알 수준의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맞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황이 변했을 때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거기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모래알이 자갈이 되는 단계를 지나 자갈이 돌멩이가 되고 다시 돌멩이가 바위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바위는 시인이 얘기한 최상층의 단계에 자리한다. 누군가가 이 최상층에 올라섰다면 당연히 여기에 걸맞게 스스로가 변해야 할 것이다. 바위로 세상을 살아야할 자가 여전히 돌멩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바위는 바위가 아니다. 단순히 바위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바위로 사는 것이 목표가 될 때, 그 바위는 비로소 세상이 우러르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바위의 자리에 선 자가 한낱 돌멩이로 간주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면 정말 슬프지 않겠는가!


역자가 4연 10행으로 된 원시를 10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기는 하였지만 구사한 장법(章法)이 상당히 복잡하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전체 10구의 시는 3구 1단, 2구 1단, 3구 1단, 2구 1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매구마다 압운을 하였으며, 압운자의 중복 사용 또한 기피하지 않았다. 또 원시의 패턴을 따라 각 단 첫머리에 ‘勿’을 두어 통일성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단에서는 한역의 편의를 고려하여 2구 모두 ‘勿’자를 사용하였다.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石(석)’·‘宅(택)’·‘石(석)’, ‘石(석)’·‘宅(택)’, ‘礫(력)’·‘宅(택)’·‘側(측)’, ‘席(석)’·‘亦(역)’이다.


2020. 10. 20.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