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소쩍새, 이대흠
소쩍새



이대흠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의 길



어린 새끼들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행여 길 끊어질까봐


어미 소쩍새는


쑥독쑥독 징검돌


연이어 놓는다



골 깊은 봄밤


새끼 걱정에 쑥떡 얹힌 듯


목이 메어


목이 쉬어



【태헌의 한역(漢譯)】


杜鵑(두견)



夜來杜鵑鳴做路(야래두견명주로)


聲路暗裏亦不滅(성로암리역불멸)


稚子隨路能歸巢(치자수로능귀소)


母鳥猶恐路或絶(모조유공로혹절)


咕咕又咕咕(고고우고고)


不斷設跳磴(부단설도등)


春夜谷深處(곡심춘야처)


念兒憂子情(염아우자정)


恰如滞艾糕(흡여체애고)


咽塞嘶啞聲(인색시아성)



[주석]


* 杜鵑(두견) : 이 역시(譯詩)에서는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였다. 본래 두견[두견새]과 소쩍새는 과(科)가 다르고, 주행성과 야행성으로 생태 또한 다르지만 예로부터 혼용하여 왔고 표기 역시 그러하였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쓰이는 ‘杜鵑’이라는 어휘로 소쩍새를 대신하기로 한다. 보통 소쩍새의 뜻으로 사용하는 ‘제결(鶗鴂)’ 역시 두견새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夜來(야래) : 밤이 오다, 밤이 되다. / 鳴做路(명주로) : 울음으로 길을 만들다. ‘鳴’ 앞에 ‘以(이)’가 생략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聲路(성로) : 소리의 길, 소리가 만드는 길. / 暗裏(암리) : 어둠 속. / 亦(역) : 또, 또한. / 不滅(불멸) : 사라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다.


稚子(치자) : 어린아이, 새끼. / 隨路(수로) : 길을 따르다, 길을 따라. / 能(능) : ~을 할 수 있다. / 歸巢(귀소) : (동물이) 집이나 둥지로 돌아가다.


母鳥(모조) : 어미 새. / 猶(유) : 오히려. / 恐(공) : ~을 두려워하다. / 路或絶(노혹절) : 길이 간혹 끊어지다, 길이 혹시 끊어지다.


咕咕(고고) : 꾹꾹. 꾸르륵. 여기서는 소쩍새가 우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擬聲語)로 사용하였다. / 又(우) : 또, 또한.


不斷(부단) : 끊임없이, 연이어. / 設(설) : ~을 가설하다, ~을 놓다. / 跳磴(도등) : 징검다리, 징검돌.


春夜(춘야) : 봄밤. / 谷深處(곡심처) : 골(짝)이 깊은 곳.


念兒憂子(염아우자) : 자식 혹은 새끼를 염려하고 걱정하다. / 情(정) : 정, 생각, 마음.


恰如(흡여) : 흡사 ~와 같다, 바로 ~와 같다. / 滞(체) : ~에 체하다. / 艾糕(애고) : 쑥떡. 이 대목에서 시인이 ‘쑥떡’을 언급한 것은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쑥떡’과 비슷하게 들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인은 소쩍새의 울음소리를 ‘쑥독쑥독’으로 표현하였다.


咽塞(인색) : 목이 메다, 목이 막히다. / 嘶啞(시아) : 목이 쉬다. / 聲(성) : 소리.



[직역]


소쩍새



밤이 되면 소쩍새는


울음으로 길을 만드나니


소리의 길은 어둠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린 새끼들 길을 따라


둥지로 돌아갈 수 있는데


어미 소쩍새는 오히려


길 혹시 끊어질까 걱정!


쑥독쑥독 또 쑥독쑥독


징검돌을 연이어 놓는다


봄밤 골 깊은 곳에서


새끼 걱정하는 마음에


마치 쑥떡에 얹힌 듯


목이 메고 목이 쉰 소리!



[한역 노트]


역자는 애초에 ‘어린 것들은 예쁘지만 말을 무지 안 듣는다.’는 것을 화두(話頭)로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역자가 과거에 배운 것으로 기억되는 ‘稚者皆美(치자개미)’라는 말의 출처 때문이었다. ‘어린 것들은 모두 예쁘다.’는 이 말은 맹세코 역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고전종합DB’와 ‘사고전서(四庫全書)’는 물론 ‘Baidu’,나 ‘Google’ 같은 세계적인 검색 엔진에서도 일체 검색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나! 이게 뭔 일이래?’ 역자는 갑자기 머리를 무엇에 한 방 맞은 듯이 멍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어느 선생님에게 배웠던가를 떠올려보려고 한동안 노력하였지만 허사였다. 학교 선생님이나 역자가 개인적으로 사사한 몇 분 선생님에게 분명 배웠을 터이지만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다만 역자가 잠깐 어느 대학의 조교로 근무하던 시절에 학생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사자성어’(?)를 얘기해준 기억만큼은 또렷하게 떠오르니 적어도 역자가 서른이 되기 이전에 배운 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어린 것들은 다 예쁘다’는 한글로는 검색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어느 위대한 철인(哲人)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 듯한데, 어찌 이 네 글자의 한자어가 검색이 되지 않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稚者皆美’의 ‘者’를 ‘子’로 바꾸어 검색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역자의 이 궁금증을 누가 속 시원히 해결해준다면 필히 후사하도록 하겠다.


각설하고, 이 시는 인간 세상의 어린 것과 그를 염려하는 어미의 마음을 봄밤 소쩍새에 기탁한 것이다. 새끼가 놀러 나간 것으로 보아 어미가 만드는 ‘소리의 길’이 없어도 집을 찾아갈 법하건만, 어미는 혹시 그 소리의 길이 끊어질까 염려하여 연신 소리의 징검돌을 놓는다. 요새 애들 같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지극한 모정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므로 소리 내어 우는 소쩍새는 암컷이 아니라 수컷이니 하는 얘기들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시인 역시 소쩍새 울음소리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을 모르지 않았을 것임에도, ‘인간 세상의 어린 것과 그를 염려하는 어미의 마음’을 투영(投影)시키며 시를 적어내려 갔다. 이것이 이 시의 독특한 점이고 또 매력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짐승이나 사람이나 왜 어미들은 새끼 걱정을 할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새끼들이 대개 몸집이 작고 유약한 데다 자기 방어 능력이 거의 없어 포식자들이나 사악한 자들의 사냥감이 되기 쉬운 때문이겠지만, 또 다른 이유로는 험한 세상을 헤쳐 온 어미가 들려주는 중요한 가르침들을 새끼들이 귀담아 듣지 않고 제 내키는 대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답은 막둥이처럼 잘하면서도 어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낭패를 겪은 어린 것들이 여태 얼마나 많았을까?


머리가 허옇게 세도록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영혼의 어버이라 할 수 있는 옛 성현들과 역사의 가르침에 귀를 막고 눈을 닫아버리는 사람들은, 아직 아는 것이 없어 두려움을 모르는 저 어린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곧 세상과 역사를 모른다는 뜻이다. 세상을 알고 역사를 알고서 어찌 두려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언제까지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어리석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한심하고 또 한심하다.


5연 14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칠언고시 4구와 오언고시 6구로 이루어진 10구의 한역시로 재구성하였다. 한역시는 각 짝수구마다 압운을 하였지만 칠언과 오언의 압운을 달리 하였다. 이 시의 압운자는 ‘滅(멸)’·‘絶(절)’, ‘磴(등)’·‘情(정)’·‘聲(성)’이다.


2020. 4. 21.


강성위 한경닷컴 칼럼니스트(hans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