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도움을 기꺼이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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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도움을 기꺼이 구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고 주 아이템이었던 자동차 부품에 흥미를 잃고, 몇 가지 아이템을 전전할 때가 있었다. 팔려는 아이템에 대한 확신한 지식이나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때는 금전적인 문제도 어려웠지만 어디에 어떻게 쓸 방도도 없었다. 그 때 나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도움도 받을 수있는 때가 있고, 남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뭔가를 할 ‘꺼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돈을 받아봐야 할 거리가 없고, 주변의 선후배들이 무엇을 도와줄 까 해도 딱히나 생각나는 게 없었다. 무역을 할려면 팔만한 물건이 있어야 했는 데 달랑 있던 자동차부품에 흥미를 잃고 나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정말 아침에 일어나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그 막막함이란………
그러다가 발가락양말이 기회를 만들어 주면서 제법 회사의 모양을 갖추어 갈 때였다. 그 때는 유럽의 바이어와 인터넷으로 채팅하기 위하여 저녁 시간을 사무실에만 쳐박혀 있었다. 그 때 나름대로의 이유는 내가 오후 4-9시까지 일을 하면 핀란드나 독일에서는 오전에 나와 채팅을 하고, 오후에 바로 일을 진행할 수있기 때문에 하루를 번다는 뜻이었다. 별로 남의 도움을 받을 일도 없었고, 거래선이 아닌 사람을 굳이 만날 이유도 없었고, 내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나의 사무실로 오기 때문에 사무실 밖으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이어와의 일일 채팅으로 의사결정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그 때로서는 최선인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사업을 하다보면 잘 되던, 잘 안되던 주변의 도움은 언제나 필요하다. 도움이라는 것이 꼭 돈만은 아니다. 물론 그게 크기는 하지만, 그 도움은 내가 정말 확실하고 상대도 확신이 서야만 한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둘 다 부담스럽다. 돈을 받는 것만이 도움이 아니다. 사실 돈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처음 한 번뿐이다. 그 다음부터는 돈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도움을 줄 만한 사람도 더 이상의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내 돈을 날리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렵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확신이 선다면 받아야 한다. 남에게 도움을 받아봐야 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도움은 대체로 1번으로 끝난다.
어쨋거나 내 입맛에 딱 맞는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 남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좋다. 돈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피차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나머지 도움은 당당하게 요구할 수있다. 물론 대다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못된다. 그래도 자꾸만 알려줘야 한다. 내가 어려운 데 도와주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에게 그래도 말은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화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서라도 요청을 해야 한다. 설령 못받더라도 섭섭해 하지는 말자. 원래 대부분의 경우 못받는 게 당연하니까.
도움의 종류는 많다. 금전전으로 도움을 받는 것,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 조언을 주는 것, 사무실을 빌려주는 것, 술을 사주는 것………. 자기 사업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해줄 만한 사람도 있어야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누가 부르기만 하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가서 만나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카페 활동도 하고 있다. 내가 주관하는 카페로는 네이버의 ‘무역 무작정따라하기’가 있고, ‘네이버’의 ‘숲찾사(숲을 찾는 사람들)’ 카페에도 가입해서 참가하고 있다. 친구들과의 등산모임에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사람의 충고를 받기도 쉽지 않다. 최근들어 산에 자주 다닌다. 동행하는 사람은 아내일 때도 있지만 주로 친구들과 같이 간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친구, 사회 친구……
산에 올라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내려와서는 산에 가면 의례 막걸리 한 잔을 걸치는 의식을 하기 마련이다. 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나이가 쉰 다되가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들도 꽤 된다. 그런데 생각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비슷하게 사업을 하고, 서로 알고 지내기 시작한 지 수십년이 된 지금에도 ‘왜 내 친구가 그렇게 사는 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때는 상대의 충고가 이해가지 않을 때도 있다. 섭섭하게 들리기만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는 충고도 있다. 그 건 나의 사고방식이 그들과 다르거나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다. 반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번에 신발을 새로 시작하면서 친구들에게 들은 충고중의 하나가 좀 더 사업가적인 스케일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사실 신발을 처음 수입하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수출만 하다보니 국내 인맥이 무척 아쉬웠다. 신발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는 해야겠고, 아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전단지를 만들어서 청계산이고 북한산이고, 아니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뿌리고 다녔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답답해 했다. ‘그렇게 해봐야 얼마나 팔겠냐?’ 면서 직접 팔아줄 만한 사람을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그럼 난 ‘내가 지금으로서는 아는 사람도 없는 입장에서 이게 최선이다’라고 응수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두어번 듣다보니 이해가 갔다. 물론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중간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 한두켤레씩 팔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친구들에게 ‘그럼 만날 만한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 그럼 그 친구들은 또 그런다. ‘아직 그런 사람도 모르냐?’고. 그 소리듣고 또 복창이 터졌다. 그 동안 내수와는 담을 쌓고 수출만 전력투구해오던 내 삶을 몰라서 그런다고 섭섭해했었다. 또 몇 번을 그런 타박을 받고서야 ‘그 길도 내가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그 친구들도 내가 무척 답답했을 거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술사주면서 나에게 욕을 해댄거다. 그 섭섭하고 아쉬운 술자리를 숱하게 거치면서 난 비로소 수출위주의 마인드에서 내수도 겸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직접 만날 사람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무조건 전화를 하기도 하고, 아는 사람으로부터 부탁을 해서 몇몇 사람의 전화번호를 받아 약속을 하여 만나기도 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연줄이 연줄을 이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점차 신발사업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유통망과 물류망에 대한 이해를 하고, 서서히 매출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신발을 하면서 어렵사리 구하기 시작한 도움을 받다보니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 시작하였다. 도움을 많이 받다보니 어떻게 도와주는 게 좋은 도움인지 알겠다. 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 지, 왜 그런 도움이 필요한 지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물어보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를 보면 고맙기도 하거니와, ‘참 생각이 깊고 그동안 잘 살아왔구나’ 하는 존경심마저 든다.
도움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데 도와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가족말고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가’ 유누스도 비록 단돈 20달러를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여인들에게 아무 담보없이 빌려주지만 갚지 않을 만한 사람들에게는 빌려주지 않는다. 어려운 데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자. 그들이 나를 도와줄 때는 이타적인 인간성의 발현 속에서 미래에 들어올 가치를 기대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도와주는 거다. 스스로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여전히 나는 괜찮은 놈이고, 남들도 그 걸 안다.
도움 받는 것을 부끄러워말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데 받지 못함을 창피해하자. 내가 도움을 구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나 고민해보자. 도움을 받을 수있을 때는 거리낌없이 받자. 그건 내가 도움을 받을 만하니까 받는거다. 내가 받은 도움만큼, 날 도와준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더 크게 갚으면 된다. 날 도와주는 사람도 그런 재미를 기대하기 때문에 날 도와준다.
그리고 받을 만한 도움을 때에는 전혀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도 없다. 살다보면 자존심이 그리 중요치 않을 때도 많다. 상대는 호의로 주겠다는 데, 내 자존심 때문에 거절한다면 상대의 자존심도 상하는 거다. 자존심이란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도움을 받을 때는 고마워하자, 그리고 당당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