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벽화를 보면, 얼굴은 옆으로 몸은 정면으로 발은 옆으로 그려져 있다. 조선 시대의 관원들이 그린 그림은 어떤 사람은 앞면이 그려져 있고, 어떤 사람은 옆 모습이 그려져있다.
젊은 시절에는 옛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서툴러서 그렇게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치 그것이 맞는 것인양 많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우리의 선조는 선사 시대에 이미 사진만큼 정교하게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실제 그림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당황 ^^;

진중권씨의 미학오디세이 책에서 보면 원시 시대를 포함한 과거에는 예술이 지식 체계이자 정보전달의 수단이었다 그래서 우리 선조의 그림이나 이집트 벽화는 보이는 대로, 가장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그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의 회화는 아는 대로 그리는 관념의 시대에 도달해 있다. 그래서 약간은 이상한 (?) 그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무지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직장 생활을 하는 후배들에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하고 싶고, 추가로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부족하고 그러므로 나처럼 함부로 말을 떠벌리고 다니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학교 정원의 잔디밭을 오랜 세월 지켜보았으므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잔디밭에는 잔디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개미, 거미 외 수십종의 동물이 살고, 잔디도 한종류만 있지 않고 10여종의 잔디가 섞여 있었다.
결국 내가 아는 것은 녹색의 잔디가 있다는 것이 었는데, 색도 녹색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아는 것은 학교의 정원에 잔디가 있다는 것인데, 정원에 있는 10여종의 잔디 중에서 내가 있다고 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니, 그 또한 아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의 잔디를 보며 감상할 뿐, 안다고 말하면 안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무엇을 못한다고, 무엇이 어떻다고 함부로 떠 벌리면 안되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아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마지막으로 내가 떠벌려 본 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떠벌리며 남을 험담할 시간에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것이 여러모로 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