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향기롭게' 길상사 추모법회…특별행사없이 간소하게 치러져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 갖지 않는 것"…법정스님 11주기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

"
11일이면 법정(法頂)스님이 열반에 든 지 11년이 된다.

법정스님을 떠올리면 '무소유'의 가르침이 따라온다.

무소유 안에는 생명 중심의 나눔의 삶이 자리한다.

세속 명리와 번잡함을 싫어했던 그는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사는 청빈의 삶을 실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한국 전쟁의 비극을 겪고서 진리의 길을 찾아 출가했다.

1956년 효봉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은 후 통영 미래사,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고 승려가 됐다.

1960년 양산 통도사에서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고, 불교계 언론과 유력 신문에 글을 썼다.

어두웠던 1970년대 민주화운동에 나섰으나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8명이 사형을 당한 데 충격을 받고 본래 수행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무소유 사상을 설파하며 살다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겨 홀로 수행했다.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 갖지 않는 것"…법정스님 11주기
1993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모임'을 발족하며 무소유 사상을 대중에 설파했다.

그의 사상에 감동한 길상화 고(故) 김영한 보살은 자신이 운영하던 고급요정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보시했다.

대원각은 일부 보수작업을 거쳐 1997년 말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라는 이름의 사찰로 창건됐다.

법정스님은 말년에 폐암이 깊었으나 예불을 거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리 남긴 유언장에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을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에 줘 맑고 향기로운 사회 구현에 사용토록 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책도 더는 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세, 법랍 55세였다.

9일 길상사에서는 그의 입적 11주기를 추모하는 법회가 봉행됐다.

추모객이 경내 설법전에 모였으나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별도의 대중공양이나 특별한 추모행사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내 이름으로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을 행하지 말라'고 유언했던 그의 말처럼 한해 한번 열리는 추모 다례제도 간소하게 열린 셈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