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산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다. 스포츠 산업의 중심인 미국과 유럽 지역 스포츠 리그들이 일시 중단되고, 관중 없는 경기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스포츠 산업이 작년 한 해 포기한 수입만 50조~60조원에 육박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막대한 재무적 손실과 코로나19 해소를 둘러싼 불확실성 속에서 인수합병(M&A)를 비롯한 투자는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붕괴된 산업의 틈은 사모펀드(PEF),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파고들고 있다. 스포츠 구단이나 리그를 싼 가격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이자, 낡은 비즈니스 방식에 갇혀 있던 스포츠 산업에서 탈피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범람하는 스포츠 SPAC...유명 스포츠팀 사들이는 사모펀드들

야후 파이낸스에 따르면 미국 자산운용사 누버거버만(Neuberger Berman)의 자회사 다이얼 캐피털(Dyal Capital Partners)은 오는 3월 말까지 7억5000만 달러의 펀드를 조성해 6개 미국프로농구(NBA)구단에 대한 지분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다이얼캐피털은 글로벌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소수 지분을 인수하는 시리즈 펀드로 유명한 운용사다. 성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산업 및 산업 내 선두주자에 대한 지분 투자의 경험을 스포츠 산업으로 확장시키는 행보다.

같은 시기 글로벌 사모펀드 CVC캐피털은 NBA팀 샌안토니오 스퍼스 지분 15%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CVC캐피털은 과거 포뮬러1(F1) 리그 투자로 상당한 고수익을 낸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 대유행 이후 저평가된 스포츠 산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이 운용사는 이탈리아 프로축구 리그 세리에A에 대한 17억 유로 규모의 지분 투자 역시 추진 중이다. 지난 2월엔 국제배구연맹(이하 FIVB)과 조성한 펀드를 통해 국제 배구리그인 발리볼월드에 투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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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스포츠 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운용사도 만들어지고 있다. 2019년 사모펀드 및 프로스포츠팀 임원들이 설립한 신생 사모펀드 악토스 스포츠 파트너스(Arctos Sports Partners)는 보스턴 레드삭스, 영국 리버풀 FC등을 보유한 팬웨이 스포츠 그룹 등의 소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악토스는 이달 초 미국 프로야구 구단 시카고 컵스의 사장으로 108년 간 우승을 하지 못했던 컵스를 우승으로 이끈 '우승청부사' 테오 앱스타인을 영입해 스포츠 산업에 투자하기 위한 2억 7500만 달러 규모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 조성에 나서기도 했다. 야후스포츠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만 29개의 스포츠 관련 SPAC이 형성돼 91억 달러를 모금했다. 2020년에는 53개의 스포츠 관련 SPAC에 205억 달러가 몰렸다.

기업을 싸게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높여 매각하는 사모펀드들이 스포츠 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시장의 확장성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글로벌 스포츠 산업은 연간 5%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전체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약 15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사모펀드들이 스포츠 리그나 구단에 투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중계권 시장은 전통적인 매체인 TV를 넘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새로운 미디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유통시키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을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오랜 역사만큼 전통적인 가족 경영 등으로 변화에 둔감한 구단이 여전히 많아 재무적 관점에서 조금만 손을 봐도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도 사모펀드들이 꾸준히 스포츠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신인 드래프트 등을 통해 유망주를 선발하고,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워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금 수혈을 통해 검증된 슈퍼 스타를 영입해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되면서 구단들이 외부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SK와이번스 매각...국내 스포츠 리그 전환점 될까

코로나19 대유행은 국내 스포츠 산업에도 전환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스포츠 리그는 삼성, LG, SK등 대기업들의 후원 속에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근 야구단 SK와이번스가 신세계그룹 계열사 이마트에 매각되고, 프로 농구단 전자랜드가 인수합병(M&A)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업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투자 업계에선 SK의 야구단 매각, 다른 한편으로 신세계의 야구단 인수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전자상거래를 중심으로 한 유통 시장의 전환기에도 스타필드 등 체험형 공간 투자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신세계는 야구단이 가진 컨텐츠와 인프라를 쇼핑과 결합시키려 하고 있다. 야구장을 다양한 여가 활동이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센터이자 새로운 유통 플랫폼으로 만들고, 스포츠 팬을 강력한 소비층으로 부상시켜 단순한 홍보 효과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신세계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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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SK그룹은 모회사의 재정에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한 때 그룹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야구단을 매각했다. 매각가는 업계의 예상보다 낮은 1352억 8000만원에 그쳤다. 매각 작업은 결과적으로 최태원 SK 회장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결단으로 이뤄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나름의 기준으로 밸류에이션을 했겠지만 이 과정이 기업 오너들의 결단에 따른 게 아니라 체계적인 밸류에이션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구단이 단순 홍보 수단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거래지만, 정밀한 투자 기법을 활용한 기관투자자들이 유입되고, 비즈니스의 확장이 이뤄지고 있는 선진국에 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란 것이 업계의 평가다.

그럼에도 변화의 씨앗은 피어나고 있다. 전통 스포츠 리그가 아닌 e스포츠 리그에는 사모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시작됐다. 사모펀드 ATU파트너스는 2019년 11월 아시아 최초로 e스포츠 전용 사모투자 펀드를 조성해 리그오브레전드(LoL)구단인 DRX를 인수했다.

이 펀드는 글로벌 e스포츠 에이전시인 아지트(Azyt)에 투자했고 작년엔 크리에이터 솔루션 제공 스타트업인 이제이엔(EJN)에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국내 대형 벤처캐피털과 함께 투자하기도 했다. 스포츠 조직 자체를 넘어 디지털 채널과 스트리밍 플랫폼, 가상현실 등 팬들과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공간으로 비즈니스를 확장해나감으로써 수익을 창출해나가는 모델로, 투자기관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스포츠 산업에선 빠르게 도입되는 트렌드다.

투자 업계선 국내 스포츠 산업이 성장하려면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이 100%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아닌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 투자가 이뤄지고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 기존에 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업을 창출해나가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국내 스포츠 리그는 시장이 국내에 한정된다는 태생적 한계와 대기업 중심의 지배구조 때문에 성장이 더뎠다"며 "그게 오히려 산업의 성장 자체를 늦췄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투자자 입장에선 더 큰 개선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아직은 첫 발도 떼지 못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시장의 변화가 조만간 한국 스포츠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