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의 미학경영] 車 경쟁력…승차감·하차감, 그 다음은?
세계 자동차산업은 바야흐로 목숨을 건 전쟁 중이다. 새로운 전기차 사단과 기존 내연기관차 사단 간 미래 모빌리티산업의 우선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전기차 사단의 선두에 선 테슬라 시가총액은 지난 7월 내연기관차 시총 1위를 지켜온 도요타를 앞질렀다. 현재는 두 배에 육박한다. 현대자동차도 미래 모빌리티 주도권 경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증시의 관심은 테슬라가 앞장서 이끄는 전기차 군단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120년 역사의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인가다. 전기차의 기술적 타당성과 경제성, 핵심 부품인 배터리 생산의 주도권을 중심에 둔 모빌리티산업의 수직계열화 가능성과 수평적 분업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주행차의 기술 완성도 역시 운명을 건 경쟁의 축으로 평가한다. 미래 모빌리티산업의 경쟁우위 조건으로 신기술 확보와 통제 관점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기술 전략과 생산원가 시스템 경쟁에는 무관심한 소비자들의 브랜드 선택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879년 카를 벤츠가 2행정 가솔린 엔진 특허를 등록한 이후 자동차는 더 빠르고 편안한 ‘승차감’을 주는 것이 경쟁의 관건이었다. 강력한 엔진과 가벼운 차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 즉 기능성(function)이 경쟁의 승패를 결정했다. 언제부턴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부러움을 받는 이른바 ‘하차감’이 주요 관심사가 됐다. 관능성(beauty)을 갖춘 고급 자동차의 희소성과 심미성이 소비 욕구를 자극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 전쟁도 가세했다.

팬덤의 정서 '팬차감'이 부각

[김효근의 미학경영] 車 경쟁력…승차감·하차감, 그 다음은?
소비자의 선택 기준이 또 달라지고 있다. 뛰어난 기능성과 멋진 디자인뿐 아니라 차를 만드는 기업과 리더의 철학, 사명, 가치 등 정체성에 끌리기 시작했다. 이런 정체성(identity)은 제품 선택 시 ‘선호 우위’에서 ‘팬덤’으로 발전한다. 특정 차 브랜드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팬덤 정서, 말하자면 ‘팬차감’이다.

‘팬차감’이 높은 소비자는 차를 재구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위 사람에게 열정적으로 그 차를 권유한다. 해당 기업과 관련해 정부 또는 언론의 비난이 있을 때 자신의 시간, 지식, 인맥, 에너지를 총동원해 브랜드를 옹호하고 비난자의 오류를 지적하는 방어자 역할을 자임한다. 지난해 11월 테슬라의 전기 픽업트럭인 ‘사이버트럭’ 공개행사 때 유리창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 언론이 테슬라의 기술적 오류 가능성을 지적하고 부정적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테슬라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테슬라의 입장을 옹호하고 다양한 합리적 설명을 통해 부정적 인식이 퍼지는 것을 막는 행동이 이어졌다. 잠시 급락했던 테슬라 주가는 바로 회복됐다.

드높은 산맥과 광활한 대지를 마주했을 때 인간은 숭고한 감정을 느낀다. 꽃을 봤을 때의 미적 경험과 구분되는 압도적인 힘이다. 숭고함은 상상력과 이성을 조화시켜 감탄을 내뱉게 한다. 인류 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인간이 느끼는 이런 숭고함의 전제를 도덕감이라고 했다.

감동과 숭고함 느낄 수 있어야

테슬라는 홈페이지에서 회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우리는 전기로 운행하기 위해 타협할 필요가 없다는 것- 전기 자동차가 가솔린 자동차보다 빠르고 즐거운 운전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엔지니어들에 의해 설립됐습니다. 테슬라는 한시라도 빨리, 지구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고 무공해의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믿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가치와 목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부터 숭고함을 불러일으키는 차이가 시작된다. 물론 제품과 행보도 목표에 부합해야 진정성이 생긴다.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에 대한 공감은 팬덤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스스로 삶의 의미, 현존감(being)을 느끼는 단계로까지 나아간다. 자동차에 적용한다면 특정 브랜드 차를 소유하고 사용함으로써 소비자가 인식하는 매우 높은 삶의 의미와 살맛나는 정서, ‘존차감’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 소비자들에겐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힘이 주어졌다. 환경과 건강, 사회적인 발전을 고려하는 안목이 커졌고, 기업의 도덕성을 평가해 소비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상품 자체의 스펙을 떠나 이면의 가치와 기업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런 판단 행위를 통해 소비자는 ‘숭고’를 느끼는 대상에 강력한 팬심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현존감과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시대가 바뀌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수한 과학기술의 확보가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기술로 소비자에게 감동과 나아가 숭고함까지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자동차업계뿐 아니라 모든 기업의 현실이다.

김효근 <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