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시민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상가 중개업소의 매물 안내판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 시민이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상가 중개업소의 매물 안내판을 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전세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월세상한제 등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전세 수급에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코로나 악재까지 덮쳐 부동산 거래 자체가 급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월세 미스매치(수급 불균형)로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선 전세가격이 급등하는 과열 현상도 나타날 전망이다.

집 보러가기도, 보여주기도 '꺼림칙'…가을 이사철이 불안하다
17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량(지난 15일 기준)은 1918건에 그쳤다. 전달(7530건)의 25.5% 수준이다. 중개업계에서는 진행 중인 계약도 적어 거래량이 지난달보다 40% 이상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산동 T중개 대표는 “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드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확산하자 지난 주말부터 거래가 완전히 끊겼다”며 “보통 8월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거래가 많은데 올해는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파트 매매량도 급감하고 있다. 이달 들어 지난 15일까지 서울 아파트 실거래 신고는 464건으로 지난달 같은 기간(900건)의 절반 수준이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집 보여주기를 꺼릴 것”이라며 “상황이 악화되면 매매·전세 수요자들이 소량의 물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최고가에 계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씨 말랐는데 코로나까지…세입자들 "집 못구할까 두렵다"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도로 확산됐을 땐 집값이 조정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이 집값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지난 2~5월 아파트 전세가격이 빠졌다. 매물은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었다. 중개업소에 시세보다 1억원 이상 내린 ‘급전세’ 안내장이 붙을 정도였다. 같은 시기 매매가격도 주춤했다.

코로나19가 재확산 조짐을 보이는 가을 이사철 시장은 상반기와 다른 분위기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연초와 달리 전세 매물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매물이 돌지 않으면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급등한다”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가을 이사철을 앞둔 부동산 시장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대차보호법에 코로나 재확산까지

업계에 따르면 이달부터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 시행되면서 전세 매물이 급감했다. 재건축 실거주 요건 강화, 장기보유특별공제 실거주 요건 추가 등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도록 강제하는 규제들도 매물 감소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확산되면서 매물 잠김 현상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7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총 2만8822건이다. 한 달 전(4만2565건)에 비해 32.3% 급감했다. 이 기간 서울 25개 구 중 전세 매물이 늘어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은평구 최대 단지(2441가구)인 ‘녹번역 e편한세상캐슬’에는 전세 매물이 5~6건에 불과하다. 녹번동 L공인 관계자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후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겠다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세입자는 올가을 새로 이사갈 집을 찾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대치동 K공인 관계자는 “그나마 남아 있던 매물도 월세나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바뀌는 분위기”라며 “전셋집을 구하는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시세보다 높은 전세가를 받아들이거나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분양가를 웃도는 등 서울 전셋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월 입주한 마포구 ‘신촌그랑자이’ 전용면적 84㎡ 전세가가 9억5000만~10억원이다. 8억원 선이던 분양가보다 2억원가량 높다. 서대문구 ‘힐스테이트신촌’ 전용 42㎡ 전세가도 5억원 안팎으로 평균 분양가(4억원)보다 1억원 높게 형성돼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7월부터 전세 매물을 찾는다”면서도 “올해는 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거래가 위축됐고 코로나19 악재까지 겹치면서 가을 전세난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올가을 집값 과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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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가을 이사 건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전셋값뿐 아니라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 가을 상당수 세입자가 이사 대신 연장을 택할 것”이라며 “이 경우 전셋값이 5% 이내에서 인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계약 연장으로 시장에서 전세 매물이 잠기면서 희소성 때문에 전셋값이 더 오를 수 있다”며 “전셋값 상승은 매매가도 밀어 올려 강남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핵심 지역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을 전세난이 사회 갈등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부동산 불안심리가 확대 재생산될 수 있어서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전세 물량이 줄고 전셋값이 상승하면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마찰도 빈번할 것”이라며 “집값 안정은 물론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 완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최진석/정연일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