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파 단체 해산·해외 망명 잇따라…이민·유학 등 '홍콩 탈출' 늘어
입법회 선거 격돌 예고…민주파 후보 '자격 박탈' 여부, 최대 쟁점 부상
[홍콩보안법 한달] 홍콩시위는 잠잠…9월 선거가 최대 분수령
지난달 30일부터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시행된 후 한 달을 맞은 홍콩은 외견상으로는 차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연일 홍콩 도심을 뒤덮었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의 열기는 이제 홍콩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민주파 단체들은 잇달아 해산을 선언했으며, 이민이나 유학을 떠나는 홍콩인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오는 9월 입법회 선거가 수세에 몰린 민주파 진영이 기사회생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선거 패배를 우려하는 친중파 진영이 민주파 후보의 출마 자격 박탈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어 9월 선거는 홍콩 정국에 다시 한번 격랑을 불러올 전망이다.

[홍콩보안법 한달] 홍콩시위는 잠잠…9월 선거가 최대 분수령
◇홍콩 시위, 과거 속으로 사라져…민주파 단체 해산·해외 망명도 잇달아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지난해 홍콩 사회를 뒤흔들었던 반중 시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이후 매 주말이면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이르는 홍콩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복홍콩 시대혁명" 등의 구호를 외쳤지만, 이제 홍콩 거리에서 이러한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지난 1일 홍콩 주권반환 기념일을 맞아 열린 도심 시위에 수천 명이 참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에는 소규모 시위가 간혹 일어날 뿐, 대규모 반중 시위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취를 감춘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주요 요인의 하나는 최고 종신형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홍콩보안법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 형량이 30년 징역형인 마카오 국가보안법과 달리 홍콩보안법은 그 위반자가 종신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폭력 시위가 아닌 평화 시위에서도 '홍콩 독립' 등을 주장하면 바로 그 적용 대상이 된다.

370명의 시위대가 체포된 지난 1일 주권반환 기념 시위에서도 체포자 10명이 홍콩보안법 적용을 받았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홍콩 민주파 단체의 해산이나, 민주 인사의 망명도 잇따르고 있다.

홍콩보안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첫날인 1일 하루 동안 해산을 선언한 민주파 단체는 무려 7곳에 달한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 중 한 명인 조슈아 웡(黃之鋒)이 속한 데모시스토당(香港衆志)이 전격적인 해체 선언을 한 데 이어, 홍콩 독립을 주장해 온 '홍콩민족전선'도 홍콩 본부를 해체하고 모든 조직원이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 때 학생들의 시위를 이끈 '학생동원', 국제사회에 홍콩 인권 탄압의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주장해 온 '국제사무대표단', 홍콩 독립을 지향하는 '홍콩독립연맹' 등도 해산을 선언했다.

홍콩독립연맹 창립자 웨인 찬(陳家駒)은 홍콩보안법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으며, '홍콩 자치'를 주장해 온 학자인 친완(陳雲)은 사회운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조슈아 웡과 함께 '우산 혁명'을 이끈 네이선 로도 홍콩보안법 시행 직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홍콩보안법 한달] 홍콩시위는 잠잠…9월 선거가 최대 분수령
◇'홍콩 탈출' 본격화하나…이민·유학 떠나는 홍콩인 늘어
이민, 유학 등으로 홍콩을 떠나는 홍콩인도 크게 늘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보안법을 제정한 지난달 '양민증'(良民證)으로 불리는 무범죄 기록 증명서를 발급한 건수는 전월보다 63% 급증했다.

양민증이 해외 이민에 필요한 서류라는 점에서 이는 이민을 떠나려는 홍콩인의 수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 해외 이민 컨설팅업체 대표는 "지난 5월 말 홍콩보안법 추진이 가시화한 후 캐나다, 호주, 미국 등으로 해외 이민을 문의하는 사람의 수가 그 이전보다 3배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는 유학이라는 수단을 빌어 홍콩을 떠나고 있다.

올해 대만에서 학사학위 과정을 밟길 원하는 홍콩 유학생의 수는 크게 늘어 지난해보다 69% 급증했다.

영국과 호주의 고등학교, 대학교 등으로 유학을 원하는 홍콩 학생의 수도 지난해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홍콩에 거주하는 30대 박 모 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홍콩인 중 최근 이민을 떠난 사람이 벌써 4명에 이른다"며 "이들은 홍콩보안법 시행 후 홍콩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헥시트'(Hexit·Hong Kong+Exit·홍콩 이탈)가 일어날 조짐도 보인다.

지난달 주홍콩 미국 상공회의소가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 등 180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응답 기업의 30%는 홍콩보안법으로 인해 홍콩 이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홍콩보안법 한달] 홍콩시위는 잠잠…9월 선거가 최대 분수령
◇민주파, 9월 선거서 '권토중래' 노려…후보 자격 박탈 우려도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 민주파가 궁지에 몰린 것으로 보이지만, 민주파에도 '권토중래'를 노릴 절호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오는 9월 입법회 선거이다.

지난해 홍콩 시위 때도 홍콩이공대 내에 집결한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이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실패한 후 홍콩 민주파 진영이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 진영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친중파는 홍콩 내 18곳 구의회 중 17곳의 지배권을 잃는 쓰라린 패배를 감내해야 했다.

민주파 진영은 오는 9월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입법회 선거에 출마할 야권 단일후보를 정하는 지난 11∼12일 예비선거에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61만 명의 홍콩 시민이 참여하자 민주파 진영은 한껏 고무된 분위기이다.

민주파 진영은 이 기세를 몰아 9월 선거에서 사상 최초로 총 70석 입법회 의석 중 과반수를 차지하자는 '35플러스'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파 진영 또한 섣불리 낙관할 수만은 없다.

후보 자격 허가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 자격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홍콩 선관위가 후보의 사상 등을 문제 삼아 후보 자격을 박탈한 사례는 2016년 이후 10여 건에 달한다.

친중파 진영은 홍콩보안법에 반대 목소리를 내거나, 외국 정부의 중국 제재를 주장한 후보의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홍콩 선관위는 조슈아 웡,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전선 대표 지미 샴, 야당인 공민당의 앨빈 융 주석 등 민주파 후보들에게 사상검증 성격의 '충성 질의서'를 보내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았다.

민주파 후보들은 대부분 답변서를 통해 앞으로 외국 정부의 홍콩 제재를 요청하지 않고, 홍콩 독립에도 찬성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이들이 후보 자격 허가를 받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조슈아 웡의 경우 지난해 구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선관위는 그가 기본법 지지와 정부에 대한 충성 의사가 없다면서 그의 후보 자격을 박탈해버렸다.

야권 후보들이 대거 출마 자격을 상실하고, 이에 반발한 민주파 진영이 시위 등 저항에 나설 경우 홍콩 정국은 다시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영국으로 망명한 네이선 로는 "중국 정부는 9월 입법회 선거에 개입하려는 계획을 짜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며 "국제사회는 입법회 선거 전까지 홍콩의 상황 전개를 면밀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