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는 형사소송법상 재심 대상이 아닌 '면소' 판결도 재심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20부 (부장판사 강영수)는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이 재심 청구가 기각된 데 대해 불복해 낸 즉시항고를 받아들였다. 즉시항고는 사건의 성질상 신속히 내려야 하는 결정에 대해 인정되는 불복신청 방법으로 원칙적으로 집행정지의 효력을 갖는다.

김 이사장은 1976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김지하 시인의 시를 배포한 혐의 등으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3년 뒤 ‘YH무역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 백서’를 제작, 배포해 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1976년 선고된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해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했지만 1979년 사건에 대해서는 김 이사장 측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상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대상은 '유죄가 확정난 판결'로 면소 판결은 그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면소는 공소시효 소멸이나 형 폐지 등의 이유로 법원이 공소가 부적당하다며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을 뜻한다.

1심은 "재심 대상은 유죄의 확정판결에 한정된다"고 판단했지만 항고심은 이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로 면소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재심을 허용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법원으로서는 무죄판결을 선고해 긴급조치 제9호를 위반해 재판을 받은 사람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