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의 대표적 ‘기업 저격수’로 꼽히는 박용진 의원의 상법 개정안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법무부가 상법 개정안을 이미 입법예고한 가운데 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법무부안(案)보다 더 키우는 법안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 도입 △이사 임기 단축·해임 결의요건 완화 △다중 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의무화 등이 담겼다. 이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 임기 단축(3년→1년)은 법무부안에 없던 것으로, 특히 집중투표제에 대한 재계의 우려가 크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할 때 1주에 의결권 1표만 주는 게 아니라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부여하는 것이다. 이사 3명을 뽑을 경우 1주를 가진 소액주주가 한 이사 후보에게 3표를 몰아줄 수 있다. 소위 대주주 견제수단으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펀드나 소액주주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해외 투기자본의 국내 ‘간판’ 기업에 대한 공격을 쉽게 만들 수 있어 득보다 실이 훨씬 클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그런 선례도 있다. 세계적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2006년 KT&G 지분을 확보한 뒤 사외이사 한 명을 이사회에 진출시킬 때 활용한 수법이 당시 KT&G가 운영했던 집중투표제였다. KT&G는 경영권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알짜’ 자산을 매각하고, 배당금으로만 2조8000억원을 쏟아부어야 했다. 재계 2위 현대자동차그룹도 2018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타깃이 돼 큰 곤욕을 치렀다.

세계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국가가 러시아, 칠레, 멕시코 등 극소수에 불과하고, 선진국 중 다중 대표소송제를 채택한 나라가 드문 것도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한때 집중투표제 도입을 검토했던 법무부도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한 재계 우려를 반영해 개정안에서 제외했다.

법안을 발의한 박 의원이 “국회가 나서 (상법 개정안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통과시키고, 그 힘으로 코스피지수 3000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어불성설이다. 규제폭탄 같은 입법안을 경제활성화 법안이라고 지칭한 것부터 부적절한 데다, ‘간판 기업들의 경영권 분쟁을 부추겨 지수를 끌어올리겠다’는 소리로도 들린다.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세력의 위협에 노출된 기업들이 무슨 수로 중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겠나. 이는 경제 펀더멘털 저하로 이어져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 쇼크’로 대기업 중소기업 구분 없이 체력이 허약해진 판국이다. 집권여당이 기업 부담을 덜어주기는커녕 경영 불확실성만 잔뜩 키울 입법안을 쏟아내는 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