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디지털 헬스케어' 고군분투…인력·예산 지원으로 전문성 키워야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최근 몇 년간 행보는 산업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새로운 기술 혁신에 대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이 합리적으로 도출됐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됐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세계 최초로 3차원(3D) 프린터 기반의 의료기기(2015년), 인공지능 의료기기(2017년),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의료기기(2018년) 등의 여러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도출 과정에는 산업계와 의료계의 전문가들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참여하면서 의견 수렴을 거듭해 합리적인 안이 만들어졌다. 필자도 이 과정에 일부 참여하면서 부족하나마 힘을 보탰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최근에는 디지털 치료제 등의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2월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치료제 관련 콘퍼런스에서 우연히 미국 식품의약국(FDA) 디지털 헬스 유닛의 실무자를 만났다. FDA는 2017년 의료기기심사부(CDRH) 산하에 디지털 헬스케어 전담 부서인 ‘디지털 헬스 유닛’을 신설하고, 인력과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FDA는 사전인증제(Pre-Cert) 등의 파격적인 개선안을 내놨으며 세계 디지털 헬스케어의 규제 혁신을 이끌고 있다. FDA의 혁신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그 자리에서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한국 식약처의 활동도 소개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놀란 것은 FDA였다. 현재 FDA도 인공지능(AI) 인허가 방안을 고민하는 중인데, 한국은 2017년에 이미 가이드라인을 내놨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가 FDA가 참고하도록 가이드라인의 영문 번역본을 이 실무자에게 공유해주는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졌다.

현재 FDA 디지털 헬스 유닛은 20여 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있으며 앞으로 그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식약처의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인력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며, 여전히 전담 부서도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산업 현장에는 AI, 디지털 치료제와 같은 새로운 기술이 식약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더구나 현재 준비 중인 한국형 사전인증 제도가 연내 시행되면 이를 운영하기 위한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해진다. 이 제도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에 맞게 출시 이후에도 관리 감독을 상시로 이어가는 것이 골자다. 즉, 심사관의 업무량은 갈수록 누적된다.

식약처의 최근 몇 년 동안 성과는 시스템도 없고, 자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소수의 인원이 고군분투한 결과다. 이제는 시스템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전담 부서를 신설하고, 인력과 예산을 배정해 정식 직제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책임자와 실무자 모두 의료기기 전문가로 구성해 전문성의 양과 질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은 정작 식약처 소관이 아니라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최근 정부는 한국형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의료산업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디지털 헬스케어다. 하지만 규제의 발전 없이 의료산업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지난 몇 년 동안 식약처는 열악한 환경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뤄냈지만 시스템 없이 이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식약처가 규제 혁신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재부와 행안부에서도 지원해주기를 당부한다.

최윤섭 <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