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학현학파가 소득 상위 10%에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학현학파는 분배를 중시하는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을 따르는 진보 경제학자들의 모임으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전 청와대 경제수석), 강신욱 통계청장 등이 현 정부에 포진해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12일 서울사회경제연구소가 주최한 ‘문재인 정부 2년 경제정책 평가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코로나 이후 복지 재정’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정부가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확보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재정을 확대하는 동시에 증세 전략을 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증세를 위해서는 소득 상위 1%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소득 상위 10%를 대상으로 하는 증세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등을 합한 소득) 상위 10%는 전체 소득세의 78.5%를 냈다. 비슷한 시기 미국(70.6%) 영국(59.8%) 캐나다(53.8%) 등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정 교수 말대로 ‘핀셋 증세’가 이뤄지면 소득 상위 10%의 부담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 ‘세금 불공평’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보유세와 법인세를 더 걷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 교수는 “2017년 민간이 보유한 부동산 시가총액 대비 보유세 비중은 한국이 0.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5개국 평균(0.4%)을 밑돈다”며 “낮은 보유세가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위해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법인세율이 22%인 과표 기준 200억~3000억원의 경우 과표 구간을 나눠서 25% 구간을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3000억원을 웃도는 과표 구간에 대해서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임금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는 근로자가 비자발적으로 퇴직한 직후 재취업했을 때의 임금이 일정 수준을 밑돌면 이를 보험기금에서 보조해주는 제도다. 김혜원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 근로자는 50세 전후에 퇴직한다”며 “임금보험제도가 50세 전후 인력이 제2의 인생 경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변형윤 이사장,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주상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 학현학파 인사들이 참석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