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에 의존 '일할 의지 꺾인' 빈민가 청년, 무조건적 수당 대신 직업훈련 받았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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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노믹스
'언터처블: 1%의 우정'으로 본 실업급여
취업보다 실업수당 받기 위해
구직 활동 하는 '척' 하던 청년
우연히 백만장자 간병인으로
어깨너머 지식이 구직에 도움
'언터처블: 1%의 우정'으로 본 실업급여
취업보다 실업수당 받기 위해
구직 활동 하는 '척' 하던 청년
우연히 백만장자 간병인으로
어깨너머 지식이 구직에 도움
“대충 몇 글자 끄적여주세요. ‘능력은 있지만 이 일엔 적합하지 않다’ 같이 늘 쓰는 말 있잖아요. 세 번 거절당해야 생활보조비를 받으니깐.”
화려한 저택의 복도에 멀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온갖 학위와 경험을 자랑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찾으러 온 구직자다. 면접장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장애인을 친형제처럼 생각해서’와 같은 고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 사이 펑퍼짐한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온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있다. 드리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일자리가 아니라 실업급여.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서를 무시하고 새치기해 덜컥 면접장 안으로 들어간 드리스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인이나 해달라고 말한다.
실업급여는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은 으리으리한 저택에 수많은 가정부를 두고 사는 ‘상위 1%’ 백만장자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많지만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이런 필립을 도와주는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찾아온 건 ‘하위 1%’의 드리스. 열악한 파리 빈민가 아파트에 열 명이 넘는 가족이 살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오면서도 드리스는 필립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왜 지금 바로 서명을 못 해주냐”고 반문할 뿐이다. “사인은 해줄 테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에 다음날 다시 필립의 집을 찾은 드리스는 놓여 있던 서류를 들고 나간다. “늘 그렇게 도움만 받으면서 거저먹고 사는 거 양심에 안 찔리나?”라는 필립의 질문에 “안 찔리는데, 왜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필립이 “‘2주 안에 짐 싼다’에 내기 걸지”라는 말 한마디가 드리스의 승부욕을 건드린다. 각각 너무도 다른 두 1%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한다.
드리스는 실업보험의 실패 사례다. 실업보험의 취지는 정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고된 사람들이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수당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드리스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는 않고 실업급여에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을 가지는 순간 끊기는 실업급여가 되레 새로운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실업률의 함정
드리스는 필립의 간병인이 되기 전 실업자였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본다면 드리스는 실업자가 아니다. ‘지난 4주간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실업자의 조건(ILO·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드리스는 필립이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음에도 실업급여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떠나려 하기까지 했다. ‘일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또 다른 실업자의 조건과 어긋난다.
경제학자들은 드리스를 ‘실망 실업자’(구직 단념자)라고 부른다. 실망 실업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한다는 실업자의 조건에 맞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실업률 통계에서도 빠진다. 10명의 청년 실업자 중 5명이 상반기 공채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구직활동을 멈추고 ‘머리를 식히러’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면? 다음달 청년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프1》은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실업률 추이를 보여준다. 지난 2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4.1%다. 여기에는 실망 실업자 53만5000명이 빠졌다. 이들을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한다면 실업률은 6.3%로 껑충 뛴다.
수확 체감의 법칙과 따라잡기 효과
필립의 간병인 생활을 그만둔 드리스는 경제학적 의미의 진정한 실업자가 된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빈민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드리스는 원래 아무런 직업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필립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평생 접하지 못했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새 일자리를 찾기 위해 택배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드리스는 ‘시간엄수’라는 회사 모토를 말하는 면접위원에게 “그래서 달리의 ‘녹는 시계’ 그림을 걸어놓은 거냐”고 되묻는다. 면접위원은 예술을 좋아하는 드리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필립을 통해 어깨너머로 접한 미술 상식이 취업에까지 도움을 준 것이다.
전통적인 생산 이론에서는 이를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그래프 2》처럼 기존에 자본 투입량이 적은 상황에서 자본 한 단위를 투입하면 노동의 산출량이 커지고, 자본 투입량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는 자본 한 단위를 추가로 투입해도 산출량의 증가폭이 작다는 것을 말한다. 교육 등 인적 자본 투입이 적었던 드리스에게는 미술 상식도 큰 산출량을 주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만일 드리스가 고학력자이고 면접을 보러 간 곳이 택배회사가 아니라 로펌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수확 체감의 법칙을 국가에 적용하면 ‘따라잡기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경향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기본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해 현재 생산성이 낮더라도 수확 체감의 법칙에 따라 자본을 조금만 투자해도 노동 생산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반면 선진국에는 자본재가 많아 생산성이 높지만 자본에 추가 투자를 하더라도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한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시기와 현재의 한국을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두 사람의 우정만큼은 경제학적으로 설명 안 돼
드리스를 떠나보낸 필립은 우울증에 빠진다. 서류상으로는 드리스보다 더 경험과 기술이 많은 간병인을 고용했지만 정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다 드리스는 ‘필립이 좋지 않다’는 비서 욘(앤 르니 분)의 연락을 받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예전같이 장난을 치는 드리스를 보며 필립은 마침내 웃음을 되찾는다.
답답하다는 필립을 차에 태우고 드리스는 남부 해안가로 떠난다. 바닷가가 보이는 근사한 식당에서 드리스는 “난 당신이랑 점심 안 먹어요”라며 자리를 뜬다. 필립에겐 편지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직접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던 필립을 위해 드리스가 마련한 자리였다. 필립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드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비켜준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존 인물 드리스가 필립의 휠체어를 미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며 자책하던 필립은 재혼해서 두 딸을 뒀고, ‘실업급여로 연명하던’ 드리스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는 설명이 따라 나온다. 극과 극의 신분에 속하면서 각기 다른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이 ‘1%의 우정’을 통해 서로의 핸디캡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영화는 아름답게 그려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화려한 저택의 복도에 멀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온갖 학위와 경험을 자랑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찾으러 온 구직자다. 면접장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장애인을 친형제처럼 생각해서’와 같은 고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 사이 펑퍼짐한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온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있다. 드리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일자리가 아니라 실업급여.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서를 무시하고 새치기해 덜컥 면접장 안으로 들어간 드리스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인이나 해달라고 말한다.
실업급여는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은 으리으리한 저택에 수많은 가정부를 두고 사는 ‘상위 1%’ 백만장자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많지만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이런 필립을 도와주는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찾아온 건 ‘하위 1%’의 드리스. 열악한 파리 빈민가 아파트에 열 명이 넘는 가족이 살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오면서도 드리스는 필립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왜 지금 바로 서명을 못 해주냐”고 반문할 뿐이다. “사인은 해줄 테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에 다음날 다시 필립의 집을 찾은 드리스는 놓여 있던 서류를 들고 나간다. “늘 그렇게 도움만 받으면서 거저먹고 사는 거 양심에 안 찔리나?”라는 필립의 질문에 “안 찔리는데, 왜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필립이 “‘2주 안에 짐 싼다’에 내기 걸지”라는 말 한마디가 드리스의 승부욕을 건드린다. 각각 너무도 다른 두 1%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한다.
드리스는 실업보험의 실패 사례다. 실업보험의 취지는 정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고된 사람들이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수당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드리스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는 않고 실업급여에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을 가지는 순간 끊기는 실업급여가 되레 새로운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실업률의 함정
드리스는 필립의 간병인이 되기 전 실업자였다. 하지만 경제학적 관점에서 엄밀하게 본다면 드리스는 실업자가 아니다. ‘지난 4주간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실업자의 조건(ILO·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드리스는 필립이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음에도 실업급여를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떠나려 하기까지 했다. ‘일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취업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또 다른 실업자의 조건과 어긋난다.
경제학자들은 드리스를 ‘실망 실업자’(구직 단념자)라고 부른다. 실망 실업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한다는 실업자의 조건에 맞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실업률 통계에서도 빠진다. 10명의 청년 실업자 중 5명이 상반기 공채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구직활동을 멈추고 ‘머리를 식히러’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면? 다음달 청년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래프1》은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실업률 추이를 보여준다. 지난 2월 기준 국내 실업률은 4.1%다. 여기에는 실망 실업자 53만5000명이 빠졌다. 이들을 사실상 실업자로 분류한다면 실업률은 6.3%로 껑충 뛴다.
수확 체감의 법칙과 따라잡기 효과
필립의 간병인 생활을 그만둔 드리스는 경제학적 의미의 진정한 실업자가 된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빈민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드리스는 원래 아무런 직업 기술도 없었다. 하지만 필립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평생 접하지 못했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새 일자리를 찾기 위해 택배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 드리스는 ‘시간엄수’라는 회사 모토를 말하는 면접위원에게 “그래서 달리의 ‘녹는 시계’ 그림을 걸어놓은 거냐”고 되묻는다. 면접위원은 예술을 좋아하는 드리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필립을 통해 어깨너머로 접한 미술 상식이 취업에까지 도움을 준 것이다.
전통적인 생산 이론에서는 이를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그래프 2》처럼 기존에 자본 투입량이 적은 상황에서 자본 한 단위를 투입하면 노동의 산출량이 커지고, 자본 투입량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는 자본 한 단위를 추가로 투입해도 산출량의 증가폭이 작다는 것을 말한다. 교육 등 인적 자본 투입이 적었던 드리스에게는 미술 상식도 큰 산출량을 주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만일 드리스가 고학력자이고 면접을 보러 간 곳이 택배회사가 아니라 로펌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수확 체감의 법칙을 국가에 적용하면 ‘따라잡기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 가난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률이 높은 경향을 말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기본적인 장비도 갖추지 못해 현재 생산성이 낮더라도 수확 체감의 법칙에 따라 자본을 조금만 투자해도 노동 생산성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반면 선진국에는 자본재가 많아 생산성이 높지만 자본에 추가 투자를 하더라도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키지 못한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시기와 현재의 한국을 비교하면 이해가 쉽다.
두 사람의 우정만큼은 경제학적으로 설명 안 돼
드리스를 떠나보낸 필립은 우울증에 빠진다. 서류상으로는 드리스보다 더 경험과 기술이 많은 간병인을 고용했지만 정을 붙이지 못한다. 그러다 드리스는 ‘필립이 좋지 않다’는 비서 욘(앤 르니 분)의 연락을 받는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예전같이 장난을 치는 드리스를 보며 필립은 마침내 웃음을 되찾는다.
답답하다는 필립을 차에 태우고 드리스는 남부 해안가로 떠난다. 바닷가가 보이는 근사한 식당에서 드리스는 “난 당신이랑 점심 안 먹어요”라며 자리를 뜬다. 필립에겐 편지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직접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던 필립을 위해 드리스가 마련한 자리였다. 필립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드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비켜준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실존 인물 드리스가 필립의 휠체어를 미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며 자책하던 필립은 재혼해서 두 딸을 뒀고, ‘실업급여로 연명하던’ 드리스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됐다는 설명이 따라 나온다. 극과 극의 신분에 속하면서 각기 다른 신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던 두 사람이 ‘1%의 우정’을 통해 서로의 핸디캡을 극복해내는 과정을 영화는 아름답게 그려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