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서울 명동의 한 면세점 앞 풍경. 사진=연합뉴스
3월 서울 명동의 한 면세점 앞 풍경. 사진=연합뉴스
면세점들이 창고에 쌓인 재고 상품을 국내 백화점, 아울렛과 해외 도매상 등에 한시적으로 팔 수 있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음하는 면세점 업계가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실적을 만회 가능한 파급력 있는 조치란 분석이 나온다. '재고 명품'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백화점과 아울렛을 찾는다면 향후 '보복 소비'(코로나19 때문에 미뤄뒀던 소비를 보복하듯이 한다는 의미)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면세점 관련 기업은 1분기 코로나19 쇼크(C쇼크) 직격탄을 맞았다. 호텔신라는 올해 1분기 20년 만에 첫 분기 영업적자를 냈다. 이 같은 코로나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관세청은 지난달 29일 면세점이 재고 면세품을 수입 통관한 뒤 국내에서 판매하는 행위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품목에는 제한이 없고 6개월 이상 장기 재고 면세품만 해당된다. 재고 면세품은 유통업체를 통해 아울렛 등에서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는 최장 6개월간 시행된다. 관세청은 면세점이 해외 유통사와 도매상에 재고품을 매각하는 것도 허용했다. 외국인 대량 구매자들이 면세품을 구매한 후 출국 전에도 해외로 반출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면세점 사업자들이 현금을 확보하며 유동성에 숨통이 트일뿐 아니라 가중된 실적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따이궁(중국 보따리상)을 통한 재고 해소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롯데·신라·신세계 등 국내 주요 면세점이 보유한 재고 규모는 약 3조원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은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면세품의 제 3자 국외 반송 허용이 면세사업자의 2분기 매출 회복에 유의미할 것"이라며 "관세청은 지난 2월부터 구매수량제한 폐지, 수출인도장 사용요건 완화 등을 통해 국산 면세품의 유통 기준을 완화했는데 이번 대책을 통해 외국물품 판매까지 용이해진 것이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기업형 따이궁 수요와 맞물려 면세사업자의 실적 회복에 일조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관세청 조치로 면세점 기업의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규모의 80%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을 전망"이라며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중국인 수요 회복으로 1분기에 2~3%까지 내려갔던 시내점포 영업이익률도 회복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지면서 하늘길이 좁아진 지난 3월에도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원을 지켰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전 매장의 지난 3월 매출은 1조873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1월 161만명 수준이던 외국인 방문객수는 지난 3월 26만명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으나 매출은 여전히 1월(2조247억원)의 절반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관세청의 조치는 화장품 업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되고 있다.

나은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외 반송의 경우 ‘6개월 이상 재고’ 항목이 명시돼 있지 않다"면서 "특별한 제한 없이 화장품 유통이 가능할 경우 면세점에 등록된 기업형 따이공을 대상으로 (화장품의) 국외 반송이 가능해 국내 면세점과 화장품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박종대 연구원 역시 "면세점 전체 매출의 70%가 화장품이고, 화장품 매출의 90% 이상이 따이공 등 중국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화장품 매출은 거의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회복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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