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부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호승 경제수석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왼쪽부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호승 경제수석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정부가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마련한다고 발표하면서 지원 대가로 기업 주식을 취득하기로 했다. 미국의 항공산업 지원 방식과 비슷하다. 정부는 “기업 정상화에 따른 이익을 국민과 공유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민간기업을 지원하는 만큼 향후 주가가 상승하면 보유 지분을 팔아 국고로 환수한다는 얘기다. 산업계에선 취지엔 공감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달리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원액의 최대 20%를 정부가 보유

정부는 산업은행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해 항공·해운·조선·자동차·일반기계·전력·통신 등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기업 정상화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겠다”고 단서를 붙였다. 정부가 세금을 들여 기업을 정상화했는데 이익을 해당 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사회적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예시로 설명한 정상화 이익 공유 방안에 따르면 총 지원금액의 15~20%를 기업의 주식연계증권이나 우선주 취득을 대가로 지원하게 된다.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선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전환 과정에서 의결권 있는 보통주를 취득할 수도 있다.

정부가 마련한 정상화 이익공유 방안은 미국과 독일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 코로나19 피해로 위기에 빠진 기업에 5320억달러 규모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정상화 이익 공유를 위해 1억달러를 초과하는 지원액의 10%를 주식연계증권(warrant)과 선순위채권(senior debt) 등을 취득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미국 정부는 델타항공에 54억달러를 지원하면서 660만 주를 주당 24달러40센트에 취득할 수 있는 워런트를 얻었다. 아메리칸에어라인에 58억달러를 지원하면서는 1370만 주를 주당 12달러50센트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독일도 6000억유로의 경제안정화기금을 투입하면서 보통주, 이익참가부사채 등을 매입해 기업 정상화에 따른 이익을 공유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보통주를 취득하더라도 의결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명시한 것과 달리 정부의 정상화 이익 공유 방안에는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

“지원 반기지만 경영 개입 우려”

재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결정을 반기면서도 기업경영의 자율성이 저해될까 걱정하고 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어려운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기업을 옭아매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이익을 공유한다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익 공유의 의미가 정부 설명대로 주가가 오를 경우 매각해서 얻는 이익을 의미한다면 굳이 이익 공유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원금액 대비 주식 취득 비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정상화 이익 공유장치에 따른 주식연계증권 취득 비율은 15~20%로 미국(10%)보다 높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기업 지원에 따른 의무를 부과한 것은 해당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경영을 정상화하는 데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여지가 있다”고 걱정했다.

정부는 기업 경영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보통주를 취득해 기업에 간섭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주가가 상승하면 이익을 실현해 국민들과 공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을 국유화하겠다는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재계에서는 경영 간섭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선 세부안이 빠르게 나와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 없이 기업 주식을 취득한다고 하면 시장에선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기업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취득한 주식과 주식매입 권한을 향후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매각할지 공표해주면 불필요한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강진규/송형석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