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회적 거리두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정부는 전염병 대응전략을 감염증 확산 방지에서 벗어나 사망자 등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민들에게는 개인 위생수칙을 지키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 실천을 당부했다. 우리 연구원도 이에 호응하기 위해 지난주 수요일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 연구원은 보고서 발간이나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연구 결과를 사회와 공유하는 일을 하는 조직이라 재택근무가 가능하다.

오래된 책 냄새가 나지 않는 공간에서는 글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 한경에세이 첫 번째 원고를 쓰기 위해 재택근무 중에도 불구, 일상과 같은 시간에 연구원에 출근했다. 평소보다 조용한 원장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방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서강대 내 연구실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에서 20여 년간 경영학을 가르치다 잠시 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게 돼 지금은 학교를 휴직 중이다.

나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졸업 후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다. 임원급까지 올라간 친구들은 성실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 현실에서는 성실한 것만으로 임원 진급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내가 부러워하는 높은 사회성도 갖추고 있다. 기업에서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정반대인 ‘사회적 거리 좁히기’가 몸에 배어야 한다. 밤낮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임원으로 일하는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사회성이 부족한 나는 기업보다는 학교가 적성에 맞았다.

강의시간을 제외한 일과시간의 대부분을 연구실에서 홀로 보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권장되는 ‘혼밥’도 나에겐 익숙한 일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방지 대책으로 출퇴근 시간 유연제와 재택근무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이것 또한 내가 교수로서 오랫동안 해온 생활이다. 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미 해온 셈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한 나도 퇴근 후 친구들과 생맥주를 앞에 두고 편안한 대화를 하고 싶고, 주말이면 가족들과 맛집도 찾아다니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익숙하지 않은 많은 사람은 요즘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 알 만하다. 생업을 위협받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코로나19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돼 우리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