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무역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EU산 자동차에 관세 부과를 강력 검토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프랑스가 디지털세 도입을 보류하기로 한 것을 거론하며 “영국과 이탈리아도 디지털세 도입 계획을 멈추지 않으면 트럼프 대통령의 (보복)관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비준에 성공한 트럼프 행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EU와의 무역합의에 화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파키스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EU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며 EU에 무역합의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EU와 무역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도 “공정한 (무역)합의를 하지 않으면 내가 관세를 부과하리라는 것을 그들(EU)은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합의)시한을 안다”며 조만간 공개적으로 시한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2월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수입 자동차와 수입차 부품을 ‘국가안보에 위협’이라고 규정한 뒤 최고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검토해왔다. 특히 EU가 핵심 타깃으로 꼽힌다.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 한국, 일본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새 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 제품 구매를 늘리려고 하는 등 상당 부분 양보했기 때문이다.

반면 EU는 아직까지 미국과 ‘빅딜’에 이르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에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 자동차 등 주요 제품에 대한 관세 인하·비관세 장벽 축소, 인위적인 유로화 가치 절하 중단 등을 요구해왔다. 이를 통해 EU가 미국 제품 수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8년 4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EU를 압박했다. 이에 EU는 곧바로 28억달러어치 미국 제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며 맞섰다. 양측은 그해 7월 ‘휴전’에 합의하며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후 EU의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 문제와 프랑스 등의 디지털세 도입 움직임까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였다.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지난해 10월 ‘EU의 보조금으로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봤다’고 판정하며 미국이 유리한 위치다. 하지만 EU는 ‘미국도 보잉을 부당 지원했다’며 맞서고 있다.

디지털세는 프랑스가 전날 도입을 보류하고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대신 미국은 24억달러어치 프랑스 제품에 최고 100% 관세를 부과하려던 계획을 1년간 유예하면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영국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의 문제가 남아 있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다보스포럼 참석 중 WSJ와의 인터뷰에서 영국, 이탈리아의 디지털세 도입 움직임에 경고장을 보냈다. 디지털세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매출의 일부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으로 도입 시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들이 핵심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므누신 장관은 미·중 2단계 무역협상에 대해서도 “기존 관세를 모두 없애는 ‘빅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 철폐는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5일 “2단계 협상이 마무리되면 관세를 즉시 철폐하겠다”고 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