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촌 사례 분석…"상향식 의사결정 도입 취지인데도 현실은 아직 하향식"
서울시립대팀 "도시재생에 약자 의견반영 적어…공무원 위주"
부동산 공공 개발·관리 방식인 도시재생은 폭넓은 의견수렴과 주민 참여를 통해 추진돼야 하지만 하향식 의사결정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적 분석이 나왔다.

서울시의 정책 연구기관인 서울연구원의 도시 연구 전문지 '서울도시연구'에 15일 실린 '도시계획수립 과정에서 도시계획가의 역할에 대한 고찰' 논문은 용산구 해방촌 일대 도시재생 사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냈다.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은 2016∼2020년 국비 50억원, 시비 50억원 등 총 100억원을 들여 해방촌 33만여㎡의 주거환경 개선, 공동체·지역경제 활성화를 추진한 것이다.

논문 저자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신현주 박사와 강명구 교수는 해방촌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뤄진 85차례의 회의 자료를 분석했다.

회의 참여자들은 3가지로 나뉘었다.

공무원과 용역사, 재생사업을 총괄하는 총괄계획가 등 3개 그룹이다.

총괄계획가 그룹에는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자문계획가도 포함됐다.

연구진은 회의록에 담긴 '주요 내용'을 두고 3개 그룹 중 어디에서 의견을 많이 제시했는지를 따졌다.

총 531개의 주요 내용 중 과반인 342개(64.4%)는 공무원이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총괄·자문계획가가 의견을 낸 비율은 29.8%에 그쳤다.

공무원 의견이 주요 내용에 담기는 빈도는 사업계획 수립 전(74.1%)보다 후(51.5%)가 낮았지만 여전히 주요 내용에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3개 그룹이 회의 과정에서 보인 역할을 4가지로 구분해 봤다.

'중립적 행정활동가', 지역사회의 '합의 형성자', 사회적 약자나 소수 의견을 대변하는 '옹호자', 사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자본 영입을 논의하는 '기업가'로 분류한 뒤 역할별 비중을 파악해 본 것이다.

그 결과 대부분 참여자들이 기업가 역할에 치중했고, 옹호자 역할을 한 행위 주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의 진행 과정에서 총괄·자문계획가는 59.5%가 기업가 역할을 했고 공무원 역시 40.1%가 기업가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옹호자 역할은 공무원에게서만 나타났는데, 그마저도 1% 미만으로 극히 미미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대체로 공무원 중심의 회의가 진행됐고, 공무원의 의견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견을 제시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공무원과 견해가 다른 전문가의 의견은 반영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관이 주도하던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 의견이 반영되는 상향식 의사결정으로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자 했지만, 현실적으로 전문가들이 모인 회의에서도 아직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또 "공무원은 기업가적 역할보다 행정 본연의 행정활동가 역할에 충실하고, 용역사와 계획가가 사업을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며 "참여자들은 대의민주주의를 위해 옹호자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연구진은 해방촌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본 것이므로 도시계획 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역할을 일반화할 수는 없으며, 이런 점에서 연구의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