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유시민은 어떤 가치를 좇고 있나
사회가, 국가가 용인할 수 있는 윤리적 수준을 낮추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구성원들이 굳이 주위를 둘러보며 절제를 해야 할 유인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누군가 특권과 반칙을 일삼아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면 더 늦기 전에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부채질하게 된다. 자연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그들도 상대방을 속이거나 부패에 가담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 같은 도덕적 파멸상황을 복마전(伏魔殿)이라고 부른다.

‘조국 사태’가 우리에게 끼친 가장 큰 해악은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흠결이 많은 사람은 고위 공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인사권자에게 부담을 주는 공직자나 후보자는 자진 사퇴하는 것이 맞다. 이것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요, 상호간의 믿음이었다. 여야를 떠나, 진영을 떠나 이런 종류의 신뢰가 훼손된 적은 거의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혹만으로 사퇴시키는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고 했지만, 정작 나쁜 선례는 조국의 비양심적 버티기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의 인재를 발탁하고 기용하는 데 마땅히 작동해야 할 도덕률 자체가 무력화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말과 글도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조국의 버티기는 절벽 끝에 매달린 자연인으로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유시민은 뭐냐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조 장관의 부인이 대학 연구실에서 PC를 들고 나온 것을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 보존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사들은 수사 역사상 처음 들어보는 궤변이라고 혀를 찼다. 그게 아니라면 노트북을 사무실 바닥에 숨겨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된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자들은 당장 석방돼야 한다.

유시민은 동양대 총장에게 회유성 또는 압박성 전화를 걸어 ‘표창장 사건’을 무마하려 한 의혹도 받고 있다. 그의 해명은 취재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취재 결과는 물론 통화 사실도 보도하지 않았다. 듣고 싶은 얘기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 놓고선 방송사의 다른 취재 내용은 정색을 하고 문제를 삼았다. KBS 검찰 출입기자들이 엉터리 보도를 했다며 보직해임까지 언급했다. 아무리 조국을 보호해야 할 사정이 다급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폭주는 상상하기 어렵다. 막판에는 검찰이 조국 일가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단언도 서슴지 않았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렇게 전지전능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속내를 드러낼 때가 있지만 유시민은 이런 ‘실수’도 하지 않는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공격을 받자 “내가 조국이야?”라고 고함을 쳤다. 여권 내 알아주는 ‘조국 사수파’인 그가 본분(?)을 잊고 순간적으로 실언을 한 것으로 보였다. 김 의원은 나중에 조 장관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진영논리에 아무리 철저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인격 모두를 진영에 바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일깨웠다.

유시민에겐 이런 평범성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이나 이념적 편향, 아니면 검찰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편적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억지와 오기를 부렸다. 실망했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도대체 어떤 가치를 좇고 있는 것일까.

조국 사태의 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나면 유시민도 재평가 대상에 오를 것이다. 원래는 말과 글의 울림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알고 보니 작고 초라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좌파 진영이 그에게 환호를 보낼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엔 시효가 있다. 과거의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싫어 ‘조국 사수’를 외친 사람들 중에도 유시민에 대해 선별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조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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