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고수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변화무쌍한 주가를 알아맞힌다는 건 ‘신의 영역’에 가깝다. 김태우 KTB자산운용 대표는 여의도 운용업계에서 ‘불패 신화’로 유명하다. 20년 이상 주식 외길을 걸으면서 단 한 번도 시장에 진 적이 없다. 직접 펀드를 운용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누적 수익률만 436%에 달했다. 대학 시절 접한 영화 ‘월스트리트’(1987년)를 보며 펀드매니저의 꿈을 키웠다는 그를 서울 장충동 평양면옥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자칭타칭 ‘냉믈리에(냉면+소믈리에)’로 불린다. 면과 육수의 맛만 봐도 어느 집 냉면인지 알아차릴 정도다. 결혼 후 냉면을 좋아하는 처가 식구들 덕에 여기저기 유명 맛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이제는 거의 중독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식탁에 소고기 편육과 돼지고기 수육이 가득 담긴 접시가 놓였다. 곧바로 냉면도 나왔다. 김 대표는 돼지고기와 메밀의 조합이 일품이라며 수육을 한 점 집어들고 면발과 함께 입에 넣은 뒤 옛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속 펀드매니저 세계에 매료된 청년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 대표는 196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세 살 되던 해 서울 연남동으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졸업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학창 시절 공부만 하는 ‘샌님’은 아니었다. 경성고 1학년 때 친구인 드러머 남궁연과 함께 충무로, 무교동 일대 나이트클럽을 쏘다녔다. 재수 끝에 1987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시국은 엄중했다.

“영화 ‘1987’(2017년)에도 나왔지만 같은 과 선배인 이한열 열사가 시위 도중 쓰러지자 전교생이 단체로 시험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지요. 당시 내무부는 최루탄에 맞아 의식이 없던 이한열 열사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경찰병원으로 옮기려고 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사수대 일원으로 복면에다 쇠파이프를 든 채 병원을 밤새 지켰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1~2학년을 보내고 군대를 다녀온 김 대표는 진로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차에 영화 ‘월스트리트’를 접하고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월가와 펀드매니저 세계에 매료됐다. 일단 국내 금융회사에 입사해 펀드매니저가 된 뒤 글로벌 금융회사의 한국지사장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 복학 후 투자론 증권분석론 등 관련 전공과목만 수강했다. 공부도 재미있었다. 1~2학년 때 ‘선동열 방어율’에 근접했던 학점도 점차 평균 이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3학년 1학기부터 4학년 1학기까지 전 과목 A학점을 받았고 장학금과 함께 총장 표창장까지 받았다.

대학을 졸업한 1993년 하나은행에 들어간 김 대표는 이듬해 초 은행 내 공모를 거쳐 만 27세에 꿈에 그리던 펀드매니저가 됐다. 사학연금 두 개 펀드와 신탁부 자금을 합쳐 5000억~7000억원을 운용했다. 말단 행원 직급이었지만 당시 김승유 전무(전 하나금융그룹 회장)가 매달 주재하는 투자심의회의에도 참석했다. 투자 성과를 보고하고 한국 경제·산업 동향 및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1997년 말 종합기획부로 자리를 옮긴 그는 김승유 행장의 지시로 최종석 국제부장(최규하 전 대통령 아들)과 함께 미국 뉴욕 국제금융센터(IFC)를 찾아가 1억5200만달러의 투자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뉴욕에서 김포공항으로 입국할 때 심사 직원이 여행 사유를 묻자 농담 삼아 ‘외자 유치하고 왔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거수경례를 하더라고요. 힘들었지만 정말 뿌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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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유 박현주와의 만남

다시 펀드매니저로 돌아간 김 대표는 1999년 ‘운명처럼’ 미래에셋자산운용에 파견 근무를 가게 된다. 당시만 해도 직원 50명이 안 되는 신생 운용사에 1조원을 맡긴 하나은행은 최대 고객이었다. 당시 박현주 사장(현 미래에셋대우 회장)은 대리급 직원이던 그를 깍듯이 대했다. 수십 차례 티타임을 하면서 당시 화두인 인터넷의 미래 등을 놓고 함께 토론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 김승유와 박현주라는 한국 금융업계의 두 거목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건 최고의 행운이었지요.”

2000년 미래에셋에 전격 합류한 김 대표는 ‘인디펜던스’에 이은 두 번째 개방형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의 설립과 운용을 맡았다. “제가 평소 즐겨보는 디스커버리 채널의 이름을 땄습니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이던 구재상 상무(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도 ‘인디펜던스랑 똑같이 다섯 자여서 좋다’며 동의해줬지요.”

순자산 2조원이 넘었던 디스커버리 펀드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전체 주식형펀드 가운데 매년 상위 1%에 올랐으며 누적 수익률은 201.25%로 시장 수익률(99.91%)을 100%포인트 이상 압도했다.

국내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현실로 바꿀 기회가 왔다. 2004년 세계적 운용사인 피델리티가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외에서 공부한 적이 없는 토종파였지만 무작정 지원했다. “영어로 예상 질문·답변을 A4 용지 25장 정도로 준비해서 달달 외웠죠. 그렇게 홍콩에 가서 면접을 보는데 자꾸 정치와 관련한 모르는 단어를 질문해서 당황했지만 정치적 이벤트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 크게 상관없다는 식으로 넘겼지요. 알고 보니 그 단어는 탄핵(impeachment)이었습니다.”

국회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날 공교롭게 합격 통보를 받은 김 대표는 이듬해 피델리티가 국내 투자자를 대상으로 출시한 ‘코리아펀드’(3500억원 규모)의 운용을 맡았고 2006년부턴 글로벌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피델리티코리아펀드’(20억달러)까지 책임지게 됐다.

“코리아펀드를 운용하면서 연간 30%씩 수익률을 내니까 회사 준법감시팀에서 ‘불법이 없다면 이런 수익률이 나올 수가 없다’며 별도 조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오자 회사에서 글로벌 펀드까지 맡기더라고요. 입사 1년 만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가 됐지요.”

“세계적 금융회사 키우는 게 사명”

방금 쪄내 김이 나는 왕만두가 나왔다. 한입 베어 물었더니 고소한 만두소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김 대표는 현 직장인 KTB자산운용으로 화제를 돌렸다.

“외국계 회사에서 한국지사장을 맡아 11년 근무했는데 더 이상 승진 등을 기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만두고 무작정 유학을 떠나기로 했지요.”

만 48세에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에서 1년간 공부하면서 금융학 석사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2016년 KTB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했다. 대표가 된 이후 4차산업 1등주 펀드, 중국 1등주 펀드, 코스닥벤처펀드 등 히트작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청년 시절 세운 계획과 목표를 초과 달성한 김 대표는 이제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한국 자본시장이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멉니다. 지금까지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과 공유하면서 세계적인 금융회사를 키워내는 게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KTB자산운용은…

금융투자업계에서 작지만 시장을 선도하는 중소형 자산운용사로 평가받는다. 2014년 중국 1등주 펀드, 2017년 글로벌 4차산업 1등주 펀드 등을 선제적으로 선보여 국내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지난해에는 코스닥벤처펀드를 출시해 4268억원(2개 펀드 기준)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공모펀드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뉴욕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 최근엔 주식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 자문 포트폴리오(EMP)펀드, 해외 부동산 채권을 담은 혼합 상품 등을 적극 선보이고 있다. 1999년 설립돼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수탁액 기준(12조원) 국내 20위다.

■ 김태우 KTB 자산운용 대표 약력

△1967년 부산 출생
△1986년 서울 경성고 졸업
△1993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93년 하나은행 입행
△2000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팀장
△2004년 피델리티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
△2006년 피델리티자산운용 한국 주식투자부문 대표
△2015년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국제금융학 석사
△2016년 KTB자산운용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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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대표의 단골집 평양면옥

담백한 고기육수가 일품인 평양냉면…미쉐린도 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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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충동에 있는 평양면옥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심심한 맛이란 측면에서 평양냉면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곳”이란 평가를 받는 식당이다. 메인 메뉴인 냉면은 국산 육우 사태와 양지 등으로 낸 육수에 메밀과 전분을 8 대 2 비율로 섞은 면을 넣는다. 고기로 국물을 내는데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고 담백한 게 특징이다. 육수를 들이켠 뒤 혀끝에서 감도는 미묘한 맛에 매료돼 이곳을 계속 찾는 마니아가 많다.

돼지고기 두부 숙주 등을 푸짐하게 넣어 매일 아침 빚는 만두도 별미로 꼽힌다. 소고기 사태 편육, 돼지고기 삼겹살 수육도 곁들여 먹기 좋다. 쫄깃한 고기 한 점을 면과 함께 먹으면 냉면의 풍미가 더 살아난다.

이 식당은 2019년 미쉐린가이드 더플레이트에 선정됐다. 더플레이트는 미쉐린에서 별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을 뜻한다.

이호기/강영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