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정부에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조사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바이든 부자의 스캔들을 잇따라 주장하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은 “취임 선서를 위반한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은 바이든 조사를 시작해야 한다”며 “중국에서 일어난 일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것만큼 나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이를 직접 요청했느냐는 질문에 “그러지는 않았지만 이는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이 중국에서 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영향력을 활용해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의혹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헌터는 2013년 중국에 있는 친구가 중국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BHR 파트너스를 설립한 직후 무보수 이사로 합류했다. 그런데 같은 해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를 기점으로 BHR파트너스가 중국 정부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BHR파트너스는 바이든 부통령 방중 직후 국유 중국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헌터 바이든의 ‘중국 펀드’ 의혹에 대해 미국과 중국 금융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아들이 중국에서 15억달러를 챙겼다는데 세상에 그 어떤 펀드가 거기서 그럴 수 있겠느냐”며 “바이든이 힘을 썼기 때문이며 이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CNN은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을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촉발된 탄핵 정국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7월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뒷조사를 요구했다는 의혹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2016년 초 우크라이나 검찰이 헌터가 이사로 있는 현지 에너지기업의 비리를 수사하자 정부를 상대로 검찰총장의 해임을 종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내가 젤렌스키 대통령이라면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즉각 시작하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의 중국 커넥션 의혹을 언급하며 “중국이 수년간 무역에서 미국을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오는 10일부터 워싱턴DC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재개할 예정이다.

바이든 전 부통령과 민주당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즉각 반발했다. 바이든 선거캠프는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등에서 오류가 입증된 음모론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에 내년 미국 대선에 개입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세계가 목격하게 됐다”고 비난했다. 탄핵 조사를 주도하고 있는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취임 선서에 대한 근본적 침해”라고 강조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