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부·장 산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육성할 것인가?
아시아에서 자유무역 통상 질서를 주도해야 할 한·일 양국이 서로를 자국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은 한국 경제뿐 아니라 일본 경제에도 적지 않은 피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으로 한국으로선 그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고 시급히 소재·부품·장비 육성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육성책 추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에 의존하는 반도체, 자동차, 탄소섬유 등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외경쟁력의 핵심은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이다. 따라서 빨리 우리 기업들이 일본에서 수입해오던 소재·부품·장비와 한국에서 생산되는 동일 품목을 비교해 일정 기간 내에 품질·가격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품목과 그렇지 못한 품목으로 나눠야 한다. 전자의 품목은 육성책을 적극 추진하고 후자의 품목은 미국·유럽 등에서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기업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일본을 대신할 수 있는 유력한 국가로 독일 등이 거론되는데, 해당 국가 기업과 긴밀한 협력 체제를 구축함과 동시에 이들 국가로부터 수입 시 어떻게 물류 비용을 절감해 가격 인상을 억제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대책 수립이 요망된다.

국내 대체화를 추진하는 경우 특정 소재·부품·장비를 생산하는 업체 간 경쟁과 통·폐합 유도를 통해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정 품목의 품질과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면 연구개발(R&D) 규모가 크고 생산시설에서 규모의 경제효과를 누릴 수 있는 기업이 유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쟁을 통한 자연스러운 중견기업화 유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해당 소재·부품·장비 수요 업체와의 제휴 강화도 필요한 대목이다. 과거 한국 기업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품목 대체를 시도했을 때, 일본이 해당 품목 가격을 크게 인하해 국내 수입 대체화 기업을 어렵게 만든 사례가 적지 않았음을 상기하자. 이러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소·부·장 업체와 수요 업체 간에 긴밀한 이해관계 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들 업체가 개발한 소재·부품·장비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일정 기간까지는 수요 업체가 쉽게 외면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반도체, 자동차, 탄소섬유 등의 수요 업체들이 소·부·장 개발 과정에 일정 자본과 기술 인력을 투입하도록 하는 것도 소·부·장 수요 업체와 개발 업체 간에 긴밀한 이해관계를 갖게 하는 한 방법이다. 이러한 협력체제는 자칫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적용 제외는 국가적 긴급 사태다. 사태 극복을 통한 국민경제 생존을 위해서는 국내 기업에 적용되는 법, 규제 등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정책적 결단도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국민경제 생존’ 차원에서 대외환경 변화에의 신속한 대응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나아가 이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적용 제외를 계기로 가능한 대체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해 더 이상 일방적 의존으로 인한 낭패감을 맛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