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한반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초청한 앨리스 루스벨트가 1905년 9월 20일 덕수궁 중명전 오찬에서 받은 음식들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딸인 앨리스는 미국 아시아 순방단 일원으로 방한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20일 공개한 미국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 대한제국 황실 오찬 식단에 따르면 당시 메뉴는 모두 20개에 달했다.
배추와 무를 간장으로 간을 해 담근 김치와 후식인 정과·원소병, 배·밤·포도·홍시 같은 과일, 간장에 초를 넣은 초장·겨자에 식초와 꿀을 더한 개자(겨자)·꿀도 상에 올라왔다.
고종이 51세가 된 것을 기념해 1902년 치른 연회와 고종·순종 생일상에 나온 음식으로 구성한 이날 식단은 대한제국이 외국인에게 서양식 코스 요리를 대접했다는 기존 견해를 뒤집는다.
앨리스 루스벨트가 국빈 오찬에서 한식을 먹었다는 사실은 자서전 '혼잡의 시간들'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우리는 황실 문양으로 장식한 조선 접시와 그릇에 담긴 조선 음식(Korean food)을 먹었다.
내가 사용한 물건은 내게 선물로 주었고, 작별 인사에서 황제와 황태자는 각각 자신의 사진을 주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식단표 뒷면에는 황제가 여성과 공식적으로 한 최초의 식사라는 기록이 있다"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내세운 구본신참(舊本新參)의 개혁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상차림"이라고 설명했다.
1905년 식단은 덕수궁이 21일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전시실에서 개막해 11월 24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전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에 전시된다.
이 전시는 덕수궁이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황제의 의·식·주' 기획전 중 두 번째 행사다.
고종 생일상에 올린 음식을 기록한 발기(發記), 독일인 손탁 서명이 들어간 동의서, 황실 연회 초청장, 앨리스 루스벨트가 고종에게서 받은 사진, 이화문 그릇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실 음식을 고증해 만드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도 상영한다.
전시 공간은 개항, 대한제국 선포와 변화의 시작, 황제의 잔칫상, 대한제국 서양식 연회, 대한제국 국빈 연회 음식, 황실 연회로의 초대로 나뉜다.
덕수궁은 특별전과 연계해 다음 달 4일과 11일에 각각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과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강사로 나서는 강연회를 개최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