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9일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 액수를 추가로 인정해 형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지자 삼성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했다. 삼성의 투자 지연 우려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소재주도 동반 급락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날 대법원 판결 결과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미·중 무역전쟁 확전,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악재가 첩첩산중인 가운데 국내 대표기업에 부정적인 뉴스가 터져 가뜩이나 움츠러든 투자심리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재용 대법 판결에 시장도 충격…삼성그룹株 '우수수'
삼성그룹주, 대법원 판결에 급락

이날 코스피지수는 7.68포인트(0.40%) 내린 1933.41로 마감했다. 오후 2시께 1947.15(0.31%)까지 올랐으나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 가파르게 미끄러져 내렸다. 대법원은 선고에서 삼성이 제공한 뇌물액 규모와 관련해 이 부회장의 2심 판결 중 무죄로 봤던 부분을 추가로 뇌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다시 열릴 2심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기존 2심 판결보다 형량이 무거워질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그룹주가 즉각 타격을 받았다.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장중 6.11%까지 올랐다가 판결이 나오자 방향을 바꿔 -4.89%로 곤두박질쳤다.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도 4.05% 급락했다. 삼성물산 우선주B(-3.14%), 삼성SDS(-2.81%), 삼성전자(-1.70%), 멀티캠퍼스(-1.15%), 삼성전기(-1.03%) 등도 하락했다. 이 부회장의 2심 형량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은 물론 재구속 가능성까지 거론된 탓이다.

윤정선 KB증권 연구원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오후 2시 이후 시장 전체가 크게 출렁였다”며 “삼성 판결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증시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지연 우려 장비·소재주도 타격

증권가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삼성의 투자 지연이다. 이 때문에 이날 디스플레이 장비·소재주가 동반 급락했다. 원익머트리얼즈(-5.87%), 동진쎄미켐(-5.76%), 이오테크닉스(-5.59%), 에스에프에이(-4.81%), 주성엔지니어링(-4.36%), 원익IPS(-3.83%) 등이다.

한 디스플레이담당 애널리스트는 “중국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선 올해 안에는 대화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투자를 시작해야 한다”며 “장비·소재주 수혜와 상관없이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의 미래를 위해선 삼성의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 계획도 제대로 진행될지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8월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 명을 고용하는 ‘경제 활성화·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망, 바이오, 반도체 등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삼성이 이 부회장의 판결과 상관없이 투자를 추진하는 게 맞고, 또 그렇게 할 거라고 믿고 있다”며 “다만 불확실성이 계속되면서 삼성그룹주와 삼성 투자 관련주에 대한 투자 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